김혜정 작가의 소설집 '18세를 반납합니다'와 박상영, 김이설 등 소설가 10인이 참여한 소설집 '웃음을 선물할게'를 묶어서 리뷰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장소설이 꼭 청소년에게만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좋은 성장소설은 어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돌이켜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가 어렸을 때와 비교해서 정신적으로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그때보다 경험은 많을지 몰라도,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문화일보 8월 5일자 25면 톱에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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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집 ‘18세를 반납합니다’
性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여고생
존재감 확인 원하는 남고생 등
질풍노도 시기 섬세하게 표현
- 소설집 ‘웃음을 선물할게’
소설가 10인 웃음 주제로 집필
감동·우정·사회문제 등 담아
작가 청소년 시절 경험 엿보여
청소년 시절을 겪지 않은 어른은 없다. 자신이 어른이라면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자. 청소년 시절보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시간 동안 산전수전을 겪어 요령이 늘었다고 말할 순 있겠지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어른이 과연 얼마나 될까. 몸은 나이가 들었지만,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는 답이 가장 솔직한 답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성장소설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유효하다. 소설을 통해 좌고우면하지 않던 어린 시절에 몰입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 말이다.
‘52hz’는 최근 들어 한국 문학계에 대세로 떠오른 퀴어 서사를 여고생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고래는 보통 주파수 12~25hz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유독 52hz의 주파수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고래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 고래는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란 별명을 얻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성소수자로서 겪는 성 정체성 혼란과 사랑의 설렘이 같은 처지에 놓인 어른과 다르진 않을 것이다.
친구가 퍼트린 헛소문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교우 관계를 다룬 ‘봄이 지나가다’는 사회생활에서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어른의 교묘한 이간질이 엿보인다. 부족한 존재감을 인형 뽑기로나마 확인하고픈 남고생을 다룬 ‘퍼니랜드’는 취업 경쟁에서 밀려 좌절해 게임에 빠져드는 취업준비생 이야기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청개구리 심야식당’의 주인공들이 “100년은 산 거 같은데 겨우 열여덟이야”라며 한탄하는 모습이 치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는 센 척하지만 크고 작은 상처가 있고, 나쁜 마음을 먹기도 하지만 이내 돌아서서 후회하고야 마는 청소년의 감성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청소년에게서 어른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른에게서 청소년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큰 위안을 준다. 어리든 어리지 않든 누구나 아플 땐 아픈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니 말이다. 위로와 희망의 시작은 공감이다.
◇현재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건네는 공감의 웃음= 청소년이 어른보다 잘하는 것 한 가지를 꼽아본다면 하나는 확실하게 포함될 것이다. 바로 웃음이다. 나이가 들수록 웃음이 적어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니 말이다. ‘웃음을 선물할게’(창비)는 현재 문학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는 소설가 10인이 ‘웃음’을 주제로 쓴 짧은 소설을 엮었다. 작가들은 청소년들의 여러 고민과 갈등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소설 속에 반드시 ‘웃는 장면’을 그린다는 공통의 약속 아래 이야기를 펼쳤다. 기존 단편소설보다 분량은 가볍지만, 여운과 감동은 절대 가볍지 않다.
김이설 작가의 ‘저스트 댄스’는 댄스 학원에 다니며 자신의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여고생의 이야기다.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의 향방을 끝까지 알 수 없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국 퀴어 문학의 대표주자 박상영 작가는 ‘망나뇽의 눈물’을 통해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려고 빵을 사 먹다가 살이 찐 남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을 다소 아프게 그린다. 서진 작가의 ‘보건실의 화성인’은 자신보다 더 아픈 친구를 웃게 해 주려는 주인공의 진심과 우정으로 감동을 준다.
사회적인 문제의식 아래 진지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도 있다. 최상희 작가의 ‘여름의 고양이’는 여성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진형민 작가의 ‘웃기는 의자들’은 자퇴 선언 후 숙려 기간을 보내는 주인공의 심리를, 김중미 작가의 ‘웃어도 괜찮아’는 불의의 사고로 발달장애를 앓는 오빠를 잃은 주인공과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며 웃음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소설 곳곳에서 작가들의 청소년 시절 경험이 엿보인다. 어쩌면 작가들이야말로 소설을 쓰며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성장소설이 어른에게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 이유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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