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섬세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부럽다.
나는 그런 작가가 못 되는 놈인 데다, 기자로 밥을 벌어 먹고 살고 있으니 그런 글을 쓰기엔 틀려 먹었다.
김금희 작가의 새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도 참 좋았다.
바꿀 수 없는 과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하는 소설의 모음이다.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을 낼 수 없어 허접한 리뷰로 그친 게 아쉽다.
문화일보 9월 9일자 18면 센터에 기사를 실었다.
김금희 작가 세번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출간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종종 현재의 발목을 잡아 괴로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과거를 들여다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현재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과거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우리의 일부가 되듯, 현재는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다.
김금희 작가는 숨기고 싶은 내면을 예리하게 포착해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탁월함을 보여왔다. 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문학동네)는 극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대신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흔드는지 관찰하며 직시하기 어려운 불편한 감정을 되살린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을 불편하게 했던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된다.
소설집엔 표제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비롯해 제62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체스의 모든 것’,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문상’ 등 단편소설 9편이 수록돼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소외됐거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는 처가의 지원으로 1인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사업을 정리한 남자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상실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지만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경험임을 상기시킨다.
주인공이 아닌 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도 눈에 띈다.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의 주인공은 남자 아르바이트생과 그를 짝사랑하는 카페 사장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놓여 있다. ‘체스의 모든 것’의 주인공 또한 창피한 일을 겪으면 집요하게 그 모멸감을 되새기며 자조와 자학에 빠지는 대학교 선배와 무신경함을 가장한 강인한 자세로 모멸을 이겨나가고자 하는 동기 사이에 끼어 있다. ‘새 보러 간다’의 주인공 중 하나인 미술평론가는 자신이 존경하는 원로 예술가를 만나 그의 작품에서 자신이 찾은 의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하지만 무시당한다. 형태는 달라도 누구나 이와 비슷한 경험으로 인해 소외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김 작가는 그런 소외감이 보편적인 감정이란 점을 다시 한 번 환기한다.
김 작가는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용기 내 드러내는 일이 그로 인한 상처를 보듬는 길이라고 전한다. ‘모리와 무라’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숙부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평생 정갈한 태도를 지키며 살아왔지만, 오래전에 비정한 태도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과거를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문상’의 주인공은 조모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문상 과정에서 겪은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난다.
주제의식은 자전소설 ‘쇼퍼, 미스터리, 픽션’에서 확실해진다. 유년 시절의 상처로 말미암아 고립을 자초해 온 주인공은 소설 쓰기로 상처를 들여다보며 치유의 시간을 맞이한다. 우리의 현재 삶은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노라고. 그러므로 과거와 맞닥뜨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김 작가의 사려 깊은 문장이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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