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담당 기자를 하며 좋은 점 중 하나는 단편 소설을 읽을 일이 많다는 점이다.
장편만 편식하던 내가 강제로나마 편식을 멈추게 됐다.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젊은 작가들의 단편을 읽다 보면 많은 자극을 받는다.
염승숙 작가의 신작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도 내게 많은 자극을 준 소설이었다.
소설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진다는 건 매력적이다.
문화일보 9월 16일자 센터에 리뷰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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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새 소설집
‘세계는…’ 펴낸 염승숙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우리는 과연 자신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자신이 오른손잡이라면 왼손으로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써보자.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신체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데,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은 허상이나 기만이 아닐까.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타인을 이해할 수도 없고, 자신을 이해받을 수도 없다면, 고독은 필연이란 말인가. 염승숙(사진) 작가가 내미는 진통제는 오해의 반복이다. 염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새 소설집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문학동네)는 힘겨울지라도 오해를 피하지 않고 반복해야 이해로 나아가는 단초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집에 담긴 단편소설 7편은 모두 소중한 무언가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 보여준다. 소설집을 여는 ‘거의 모든 것의 류’는 마음에 깊이 담고도 끝내 다가가지 못한 남자를 그리워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염 작가는 이 작품에서 결국 소중한 사람을 놓친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일의 어려움을 그린다.
‘추후의 세계’는 우연 때문에 성공과 몰락을 경험한 여자와 범죄로 어린 딸을 잃은 옛 남자 친구의 의도치 않은 재회를 그린다. 염 작가는 두 주인공에게서 비극의 개별성을 보며 진정한 위로가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오래전 고독’의 마지막 부분에 담긴 주인공의 독백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메시지다.
“세이는 그저 짐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한다. 자신이 짐작하는 것이 다만 짐작에 그칠 뿐 진실은 아니며 진실에 가깝지도 않으리란 사실조차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을 지속해나가기 위해서. 짐작을 거듭해, 최선을 다해 오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염 작가는 판단 대신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저 감각 기관을 세워 집요하게 들여다보고,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성실하게 기록할 뿐이다. 소설집의 제목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는 그런 태도만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이해하고 나아가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방법이란 염 작가의 생각을 함축한 결론으로 읽힌다. 삶은 “많은 걸 잊고 또 무수히 잃어버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아 있는 건 여전히 남아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뭔가”(‘충분히 근사해’)를 찾는 과정이 아니냐고.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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