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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生의 끝을 들여다보니… 삶다운 삶 보이더라”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9. 23.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 중 하나는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인데, 우리는 죽음 뒤의 세계를 알 길이 없다.

알 길이 없는 세계를 탐색하고 의미를 발견하는 일.

그래서 문학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소현 작가의 소설집 '품위 있는 삶'은 각 소설을 통해 다양한 죽음을 들여다봄으로써 삶다운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집이다.


문화일보 9월 23일자 16면 톱에 작가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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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현 작가가 최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새 소설집 ‘품위 있는 삶’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 소설집 ‘품위…’ 낸 정소현

어려움 닥쳐와 무너질때

가장 내려놓기 쉬운게 품위

‘품위 있는 삶’ 쉽지 않음을

제목 통해 역설적으로 그려

“타인 고통 공감할수 있어야

내 아름다움도 지킬수 있어”

치매 환자·사고 당한 남녀…

죽음 다루며 삶의 의미 질문


품위 있는 삶은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하진 않지만, 품위 없는 삶으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순 없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품위 있는 삶을 강조하는 반어가 아닐까. 하지만 삶은 공기처럼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고 죽음은 낯설고 두렵다. 삶과 죽음이 보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자주 망각하는 이유다. 정소현 작가가 7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 ‘품위 있는 삶’(창비)은 다양한 죽음을 들여다봄으로써 삶다운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최근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정 작가는 “어려움에 부닥쳐 ‘나’라는 인간이 무너질 때 가장 벗어 던지기 쉬운 게 품위라고 생각한다”며 “품위 있는 삶이 쉽지 않음을 소설집 제목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소설집엔 올해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을 포함해 단편 6편이 실렸다.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은 치매 안락사 보험에 가입한 주인공이 치매가 진행될수록 더욱 살아남기를 원하는 아이러니를 그린다. 소설은 과연 환자도 치매를 ‘인간의 품위를 잃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질병’으로 생각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인간다운 죽음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정 작가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치매가 찾아왔을 때 저는 고통만을 떠올렸지만 훗날 그때 당신은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인간다운 죽음’이라고 부르는 죽음은 어디까지나 죽음을 바라보거나 준비하는 사람 처지에서의 죽음일 뿐 죽어가는 중이거나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의 죽음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작품에 따르면 품위 있는 삶의 전제 조건은 공감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엔터 샌드맨’은 폭발 사고에서 생존해 서로 의지하지만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남녀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 회의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고통은 결국 개별적이라는 것이다. 공감이 어렵다면 품위 있는 삶은 허상이 아닐까.

정 작가는 “품위 있는 삶이란 자신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타인과 세계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라며 “나는 한 번도 내가 아니었던 적이 없으므로 타인의 입장이 되긴 어렵지만, 인간이기에 내가 아픈 만큼 타인의 고통도 그러하리라 상상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공감을 위한 노력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 작가는 연작 소설 ‘어제의 일들’과 ‘지옥의 형태’에 대조되는 인물을 등장시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어제의 일들’의 주인공은 자살 시도로 장애를 입지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새로운 삶의 길을 연다. 반면 ‘지옥의 형태’의 주인공은 친구의 불행을 유도하고 확인하며 자위하다 스스로 만든 지옥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 정 작가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욕망은 애초에 충족할 수 없다”며 “내가 가지거나 이루지 못한 것을 헐뜯으며 타인을 평가절하하는 태도로는 절대적인 행복을 높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삶이 온기로 채워져 있기에 살아가는 게 아니라, 절망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어딘가에 작은 온기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사는 것 같다”며 “스스로 온기를 만들어 그 온기를 다른 곳으로 전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