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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고기 = 남의 살’… 육식의 불편한 진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9. 11. 8.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는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 문화사와 고기 먹는 불편함을 살피고,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아 고기를 얻는 과정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인지 성찰한다. 한겨레출판 제공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김태권 지음/한겨레출판

고전·종교·역사속 인물 통해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 분석

‘서양이 잘사는 이유는 고기’

19세기 일본·인도서도 믿어

현대엔 ‘공장식 축산’까지

생명에 대한 최소한 도리 요구

고기 소비 줄이는 방법도 제시


고기.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맛있는 식재료다.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즐거운 자리에 고기가 빠지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까. 고기라는 단어를 ‘남의 살’로 바꿔보자. 살짝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는가. 살인은 가장 무겁게 처벌 받는 범죄다. 한 번 끊어진 목숨은 그 어떤 수단으로도 되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살’이란 말이 불편한 것은 고기가 다른 동물을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식재료임을 자각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육식이 죄악인가. 동물도 살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데, 사람이 살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게 무슨 죄악이냐고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은 고기를 먹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고기를 먹는 이유는 맛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솔직한 대답이 아닐까. 이 책은 고기의 맛을 즐기면서도, 고기를 먹기 위해 다른 동물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미안하게 여기는 딜레마를 무겁지 않고도 진솔하게 다룬다.

저자는 고대 신화, 동서양의 고전, 종교와 역사 속 인물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 문화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잡아먹히는 이야기를 다룬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조선 후기 민화집 ‘파를 심은 사람들’은 사람과 동물의 먹고 먹히는 관계가 언제든 역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 또한 언제든 잡아먹힐 수 있다는 공포는 고기를 내주는 생명의 존귀함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깨닫게 한다.

공자가 잘게 썬 육회를 좋아했으며, ‘다비드’ 상을 조각하던 미켈란젤로가 오로지 닭의 간만 먹었다는 이야기에선 육식 문화가 매우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위인도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는 묘한 위안을 준다. 17세기 교회가 물에 사는 비버를 물고기로 인정해 고기를 금하는 사순절(예수가 수난을 당했다는 40일)에도 먹을 수 있게 했다는 대목에선 종교적 열망을 뛰어넘는 ‘육욕’이 느껴져 웃음이 나온다.

고기는 근대 세계의 역사·정치·과학에도 개입해 큰 발자취를 남겼다. 저자는 19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육식 문화의 관계에 주목한다. 당시 일본, 인도는 서양이 잘 사는 이유가 고기를 먹기 때문이라고 진지하게 믿었다. 채식주의자인 간디조차 영국을 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염소고기를 먹었을 정도다.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푼 저자는 과거보다 고기가 흔해진 오늘날에 ‘남의 살’을 받는 최소한의 도리가 무엇인지 성찰한다. 저자는 우선 많은 동물을 한꺼번에 가두고 키우는 공장식 축산에 일침을 가한다. 자연수명이 10년이 넘는 닭은 부리가 잘린 채 겨우 한 달을 살고 고기가 된다. 돼지는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지 않도록 강제로 꼬리가 잘리는데 그 과정에서 마취조차 이뤄지지 않는다.

저자는 육식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기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살핀다. 저자는 동물 배양 세포로 만든 배양육, 콩으로 만든 고기, 식용 곤충 등 육식을 대체할 식재료의 발전이 이뤄지면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도 줄어들 것이란 기대를 내비친다. 아울러 저자는 여전히 찬반 논란이 많은 화학조미료(L-글루타민산나트륨)를 육식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파격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의 주장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남의 살’을 받는 예의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볼 때임은 분명하다. 언제까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돼지, 닭을 땅에 파묻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272쪽, 1만55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