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 10명 단편소설 모음집 ‘몬스터’
‘이상 문학상 절필’ 윤이형 등
인간 군상·현실 문제 그려
진실 폭로와 타협 사이 고민
돈 앞에서 반목하는 가족 등
“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드나”
인간다움에 대해 다양한 성찰
기생충은 숙주 없이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사회적 존재로서 공생하는 인간을 경제적 지위에 따라 기생충과 숙주로 구분할 순 없다. 제아무리 권력자거나 부자라도 홀로 생존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공생해야 하는 인간이 존중받지 못하고 기생충 취급을 받을 때, 어떻게 괴물로 변해 관계를 파국으로 이끄는지 잘 보여준 블랙코미디였다. 앞서 봉 감독은 영화 ‘괴물’에서도 양극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괴물로 변하는지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양극화 외에도 무엇이 우리를 괴물로 만들까. 젊은 작가 10명이 모여 ‘괴물’을 주제로 단편소설을 쓰고 묶은 ‘몬스터’(한겨레출판)는 이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지 살핀다.
‘몬스터’는 ‘한낮의 그림자’라는 부제가 붙은 1권, ‘한밤의 목소리’라는 부제가 붙은 2권으로 나뉜다. 1권에는 최근 이상문학상과 관련한 파문으로 인해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를 비롯해 손원평·최진영·백수린·임솔아 작가가 참여해 평범한 일상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안의 괴물을 발견하는 작품들을 담았다.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윤 작가가 절필 선언을 접지 않는 이상 마지막 작품이 될 ‘드릴, 폭포, 열병’이다. 이 작품에는 몇몇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횡령했다는 무고를 당한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C를 향한 죄책감에 사죄문을 공개하려는 B와 그를 만류하는 A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A가 B의 입을 막으려 설득하는 독백으로 이뤄져 있는 이 작품은 부당한 현실 앞에서 낼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정의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한다.
각 작품의 마지막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는 어떤 모습인가요?’라는 공통 질문과 작가의 답변이 실려 있다. 이 질문에 윤 작가는 “올바름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시스템이 지닌 한계나 오류 때문에 같은 약자가 다치는 일이 생겨도 아무도 그들을 구제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윤 작가의 답변은 최근에 벌어진 이상문학상 관련 파문과 맞물려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손원평 작가의 ‘괴물들’은 쌍둥이 아이들이 남편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떠는 한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제 속으로 낳았으면서도 알 수 없는 쌍둥이 아이들을 통해, 누군가를 잘 안다는 생각이 허상이 아닌지 묻는다. 손 작가가 정의한 ‘괴물’은 “이해 불가의 타인을 부르는 말”이다.
최진영 작가의 ‘고백록’에는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괴물을 들여다본다.
‘해변의 묘지’를 쓴 백수린 작가는 ‘괴물’을 “우리의 이해를 초과하는 것”, ‘손을 내밀었다’를 쓴 임솔아 작가는 “자기 자신이 사람이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라고 정의한다.
2권에는 김동식·손아람·이혁진·듀나·곽재식 작가 등이 참여해 괴물 같은 욕망을 구현하려는 인간 군상과 사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룬다.
김동식 작가의 ‘마주치면 안 되는 아이돌’은 죽고 나면 이름조차 잊히는 아이돌들을 등장시켜 ‘망각’이 괴물이 아닌지 독자에게 질문한다.
이혁진 작가의 ‘달지도 쓰지도 않게’에 등장하는 괴물은 평화로운 가정을 순식간에 흔들고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돈이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인 작품은 손아람 작가의 ‘킹 메이커’다. 이 작품에는 상대 후보의 룸살롱 출입 동영상을 입수해 선거에서 승리한 정치 컨설턴트와 그를 영입하려는 상대 후보를 등장시켜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현실을 꼬집는다. 영화 ‘소수의견’의 원작자이자 각본을 쓰기도 했던 손 작가는 마치 영화처럼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내 흥미를 더한다.
젊은 작가들이 정의하는 ‘괴물’은 저마다 다르지만 주장하는 바는 같다. ‘괴물’은 우리 모두 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하며, 다스리려는 노력을 멈추면 언제든지 모습을 드러내 우리를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 영화 ‘기생충’처럼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오래 잔상이 남는 이유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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