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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AI가 묻는다… 인간은 왜 소멸했는가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0. 2. 20.






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7년 만에 내놓는 장편소설 ‘작별인사’를 정기구독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통해 선공개해 출판계가 그 파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밀리의 서재 제공


- 작별인사 / 김영하 지음 / 밀리의 서재

스타 작가 7년만의 장편소설

정기구독 플랫폼 통해 선공개

인간형 로봇 정체성 혼란 통해

철학 없는 기술발전에 경고장


김영하 작가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작별인사’의 장르는 과학소설(SF), 출간 방식은 정기구독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통한 선공개다. 미래를 다룬 소설이 낯선 방식으로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0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신작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연 김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이란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간단하지가 않다”며 “얼마나 위태로운 믿음 속에서 우리가 가까스로 살아가는지 돌아보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밀리의 서재’는 스타 작가의 최신작을 서점보다 먼저 플랫폼 구독자에게 공개하는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밀리의 서재’는 회원 가입에 제한을 두지 않고 두 달 뒤 서점에도 공개되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독자의 접근을 제한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작가는 이를 의식한 듯 “선공개는 근대문학 이후 작가들이 다 해온 일이다. 오랜 세월 작가들이 신문 연재를 해왔고, 계간지 등 문예지에 연재해오지 않았나. 2개월 후 일반 독자도 만날 수 있는데 독점이란 말은 안 맞는다. ‘밀리의 서재’가 독립서점과 동네서점에도 책을 공급한다는데, 가까운 동네서점이나 독립서점에서 구매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자책 플랫폼이 낯설었지만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다고 싶었다”며 “개인적으로 도전해보자고 결심했고, 이번 소설을 전자책으로 발표한다 해서 거기에 맞춘 것은 없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소설을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라고 묻는 ‘밀리의 서재’ 광고 모델로 등장해 논란을 불렀다. 그는 “출판계의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플레이어가 아니고, 더 이상 책을 안 사는 사람들이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서점 접근성이 떨어진다”면서 “그것은 그 세대의 잘못이 아니다. 책이란 일종의 땅값을 포함하는 것인데, 종이책은 그것을 보관할 장소도 필요하다. 책의 물성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별 인사’에서 다뤄지는 인간다움의 문제에 대해 “인간다움은 자기와 다른 존재를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연대하고 공감할 수 있느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타자와 연대하고 나와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인간다움의 척도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이 SF 장르인 점에 대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내 작품에도 들어가 있다. 자기를 로봇이라고 믿는 인간, 인간이라고 믿는 로봇이 모두 흥미로웠다”면서도 “딱히 소설을 쓰기 위해 특별히 참고한 SF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까지 인간으로 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인간으로 봐야 하느냐와 같은 말이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는 이름 대신 번호로 불렸다. 사회에서 배제되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런 비유로 이 소설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상의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AI)과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에 의존하는 가까운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다. 작품의 주인공은 17년간 자신을 인간으로 알고 살아온 ‘휴머노이드’ 소년 ‘철이’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이 흥미롭다. 미등록 로봇이라는 이유로 강제납치된 ‘철이’는 다른 ‘휴머노이드’, 복제인간 등 인격체로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들과 만나 인연을 맺으며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철이’는 인간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인간세가 끝나게 된 것은 SF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인간은 스스로 소멸해버렸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154페이지)

이 작품의 등장 방식이 시장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 것만은 분명하다. 173쪽, 1만4000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