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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93세 老시인의 사랑 축복 기쁨… 김남조 시집 ‘사람아, 사람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0. 3. 2.






사랑은 쉽게 나이 들지 않는가 보다. 한평생 사랑을 주제로 시를 써온 노시인에게 아직도 사랑에 관해 쓸 시어가 남아있음을 보면 말이다. 김남조(93) 시인은 새롭게 출간한 시집 ‘사람아, 사람아’(문학수첩)에서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사랑의 축복과 기쁨을 노래한다.

김 시인은 1950년 연합신문에 ‘성수’ ‘잔상’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내면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순수시인으로 활동해왔다. 이번 시집에는 ‘내 심장 나의 아가’ ‘종소리’ ‘환한 세상 아기’ 등 52편의 시가 담겨 있다.

김 시인은 지난해 한 포럼에 참석해 ‘삶의 축복’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며 “1000편 가까이 시를 썼는데, 가장 많이 쓴 건 사랑이었다”며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곳에 다 있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이 사랑이 없는 행동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등단 70년을 넘긴 김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나의 끝시집”이라고 말하며 오랜 세월 천착해 온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 번 시어로 새긴다.

“사랑 안 되고/사랑의 고백 더욱 안 된다면서/긴 세월 살고 나서/사랑 된다 사랑의 고백 무한정 된다는/이즈음에 이르렀다/사막의 밤의 행군처럼/길게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그 이슬 같은 희망이/내 가슴 에이는구나/사랑 된다/많이 사랑하고 자주 고백하는 일/된다 다 된다”(‘사랑, 된다’ 전문)

이번 시집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김 시인의 “나는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라는 고백이다. 생의 대부분을 시인으로 살아왔는데도 김 시인은 “나는 시인이 아니다”라고 부르짖는다. 김 시인은 ‘노을 무렵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적은 시인의 말을 통해 “백기 들고 항복 항복이라며 굴복한 일 여러 번”이라며 “시여 한평생 나를 이기기만 하는 시여”라는 말로 지난 삶을 되돌아본다. 아무리 오랜 세월 시를 써왔어도 시 앞에선 늘 패배자로 설 수밖에 없다는 노시인의 고백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