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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0. 11. 18.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유유)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만 먹었다가 이제야 읽은 책이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여행이 힘들어진 세상에서 제목부터 끌리는 책 아닌가?


226년 전, 저자가 불법으로 결투를 벌인 죄로 42일간 가택 연금을 당한 뒤 무료한 마음을 이기려고 쓴 기행문(이라고 해야 하나?)이다.
여행이 귀해진 시대에 저자는 어떻게 방구석을 여행했는지 궁금해 앉은 자리에서 책을 모두 읽었다.
두 세기 전에 쓰인 책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내용과 문장이 현대적이어서 놀랐다.


저자는 내 방을 여행하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너스레로 시작해 침대, 의자, 그림, 판화 등 주변의 사물을 소재로 삼아 미술, 음악, 철학, 과학 등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확장한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허세가 웃기면서도 유쾌하다.
가택연금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는 날이 오히려 철창 안으로 들어가는 날이라니. 정신승리가 쩐다.

여자에 관심 없는 척 하는데, 실은 그 지역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여자에게 수시로 관심을 보이고 ㅋ
저자가 요즘 세상에 태어났다면 좋게 말하면 논객, 낮춰 말하면 네임드 어그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기행문을 읽고 나니 내 방안에 보이는 사물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
적게는 며칠, 많게는 20년 넘게 나와 함께 한 물건들이다.
그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만 풀어내도 족히 단행본 한 권을 채울 듯싶었다.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분량도 적어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