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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사/헤럴드경제 트래블 '쉼'

(합천 황매산 철쭉기행) 막다른 봄에 자지러지고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2. 5. 17.

막다른 봄에 자지러지고…

2012-05-17 11:36

 

 

뒤늦게 핀 철쭉 합천 황매산 산허리 붉게 감싸고…키 높이까지 차오른 꽃그늘에 취해 저마다 길을 잃다

        

일상에 부대끼다 실감하지 못 한 봄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난감하다. 지난해에도 다를 것 없는 봄이었으니 올해라고 다를 게 있겠느냐고 다짐을 놓아보아도 헛헛함이 가시지 않는다면 일단 움직여야 한다. 머뭇거림이 길면 후회도 길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피안(彼岸)이다.

이팝나무 하얀 꽃 수북한 배부른 길목을 헤집어 남쪽으로 한참을 파고들면 대한민국 대표 혹서지역 경남 합천이다. 이곳에 마지막 봄이 정박해 거짓말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척하면 딱이듯 합천하면 해인사가 접미사처럼 붙지만, 5월엔 아무래도 해인사보다 철쭉을 먼저 찾는 게 남는 장사다. 여름이면 주변 다른 지역들과 최고 기온을 두고 기상 뉴스 헤드라인을 다투는 합천에서 마지막 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따가운 햇살 쏟아져 온 산하가 짙푸르게 그을리기 전에 느지막이 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합천에서 봄이 저물면 올봄도 정말 끝이다.

▶뒤늦은 철쭉이어서 더욱 반가워라= 합천군 대방면과 가희면에 걸쳐 산줄기를 풀어내는 황매산(黃梅山ㆍ1108m)은 매년 5월이면 뒤늦게 복받쳐 오른 봄기운으로 자지러진다. 황매산의 늦은 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철쭉이다. 황매산 주봉 북서쪽에서 흘러내려온 능선은 해발 900m 지점에 이르러 숨을 고르며 광활한 구릉지(황매평전)를 펼쳐내는데, 철쭉은 이곳에 대규모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전국 도처에 흔한 철쭉이건만 무리지어 산허리를 붉게 물들이는 모습은 결코 흔치 않은 장관이어서 매년 이맘때면 황매산엔 때늦은 상춘객들이 들끓는다. 이때만큼은 같은 관내에 자리 잡은 ‘국’립공원 가야산 앞에서 ‘군’립공원 ‘끗발’이 부끄럽지 않다.

본디 이 구릉지는 1970년대 목장으로 개발됐다. 당시 방목한 젖소와 양들은 독성을 가진 철쭉만 남기고 잡목과 풀을 모두 먹어치웠다. 이 과정에서 젖소와 양들은 떠나고 구릉지엔 철쭉만 남아 지금과 같은 대규모 군락을 형성했다. 인위적이라고도 자연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철쭉 군락의 형성 과정이 재미나다.

능선을 타고 목재 데크전망대까지 이어지는데 이곳에 서면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도 평균 이상의 사진이 나온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포토존을 방불케 한다. 키 높이까지 차오른 꽃그늘에 취해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만개한 꽃무더기 여기저기서 불쑥 얼굴을 내밀어 일행을 찾는다. 길을 잃었다고 타박하는 일 없이 그저 서로 허허 웃는다. 꽃처럼 얼굴을 내민 사람들의 모습이 꽃보다 환하다. 

지나갈 계절은 다가올 계절 앞에서 속수무책이지만 경남 합천 황매산에선 예외다. 뒤늦게 봄단장을 마친 황매산은 분홍색 철쭉 주단을 깔고 손님 맞을 채비 중이다. 황매산의 봄은 길게는 이달 말까지 이어진다. 황매산에서 봄이 끝나면 정말로 올봄도 끝난다.

▶지금 황매산에선 철쭉제가 한창= 만개한 상태로 길게는 2주일 이상 이어지다보니 합천군은 매년 개화 기간에 맞춰 축제를 열어 관광객들을 모으는데 힘쓰고 있다. 축제장 초입인 800m 고지까지 차도가 뻗어있고 주차장도 잘 정비돼 있어 자녀와 노부모를 동반해 가족 단위로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임도를 따라 10여분가량 걸어 오르면 바로 철쭉 군락이다.

지난 12일 황매산 철쭉제가 시작됐다. 철쭉 군락지로 향하는 들머리에선 합천의 특산물 삼가면 황토한우로 끓여낸 쇠고깃국 냄새가 자르르 퍼져 발길을 붙잡는다. 한 솥 푹 끓여낸 국물에 서린 구수한 냄새가 깊어 뿌리칠 도리가 없다. 또 다른 합천의 명물 흑돼지 바비큐가 그릴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오래전 배고팠던 시절, 못 먹는 철쭉은 ‘개꽃’으로 홀대받았다. 밥은 아름다움보다 늘 먼저다. 철쭉제는 오는 25일까지 2주간 계속된다. 다른 봄 축제 기간과 비교해 꽤 긴 편이다. 축제기간 동안 산상음악회, 철쭉 심기, 철쭉 페이스페인팅, 어린이 철쭉사진 콘테스트 등 다양한 부대 행사가 마련된다. 꽃구경 값은 공짜다. 별도 입장료는 없고 주차료(승용차 3000원, 25인승 미만 승합차 6000원)만 받고 있다.

황매산철쭉제전위원회 (055)934-1411

▶신한류의 중심지가 된 합천영상테마파크= 언젠가부터 합천에서 일본어, 중국어를 듣는 일이 흔해졌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얼굴 보기 힘들다는 귀한 스타들도 4시간 이상 밴을 타고 내달려야 하는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합천을 찾는다.

지난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 당시 용주면 가호리 일원에 조성된 세트장인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속칭 ‘대박’의 상징이다. 영화 속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평양시내 전투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이래 ‘패션 70s’, ‘서울 1945’, ‘경성스캔들’, ‘에덴의 동쪽’, ‘전우치’, ‘자이언트’, ‘써니’ 등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영화 상당수가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멀어도 스타와 제작자들이 애써 합천까지 찾아오는 이유다. 지금 이곳에선 이달 말 방영 예정인 KBS 드라마 ‘각시탈’의 촬영이 한창이다.

열차역을 본떠 만든 테마파크 입구를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서면 근대 서울시가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옛 서울역, 한국은행, 조선총독부, 반도호텔 등 근대 건축물들을 비롯해 종로 피맛골, 간이역, 극장 등 눈길 가는 곳마다 역사다. 오전ㆍ오후 1회씩 테마파크 내부 시가지를 도는 전차도 운행된다. 주말엔 오전 1회ㆍ오후 3회로 증편된다. 지난해 합천영상테마파크를 방문한 관광객은 25만명에 달한다. 올해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방문객이 40%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한류 열풍에 힘입어 외국인 관광객 방문도 더불어 급증했다. 세트장 곳곳에서 단체로 방문한 일본인, 중국인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어린이 및 청소년 2000원, 65세 이상 노인은 1500원이다. 합천군청 관광개발사업단 (055)930-3756~8

글·사진=정진영 기자/123@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