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기사/헤럴드경제 트래블 '쉼'

(보령 외연도) 내일로 향하는 황금길, 외연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2. 6. 7.

낙조 사진을 똑딱이로 찍어 거지 같이 나왔다.

이번에 큰 마음 먹고 눈물을 머금으며 미러리스 카메라(소니 Nex-5N)을 구입했다.

DSLR은 도저히 가지고 다닐 엄두가 안 나더라.

여행기자들은 장비를 구입하면 부서가 바뀐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질렀다. 설마 부서 배치된지 2달도 안 된 나를 다른 부서로 돌리지는 않겠지? 우후훗!

 

 

 

 

 

 

 

 

 

내일로 향하는 황금길, 외연도

2012-06-07 11:44

 


다시금 여름이다. 산하의 만가지 초록이 햇볕에 그을려 짙푸르게 정리되면 이내 바닷물의 푸른 빛깔이 그리워진다. 이는 불가피한 사태다. 먼 곳에서 달려와 비린내 나는 포구에 서서 희뿌연 해무 너머로 희미하게 윤곽을 그리는 섬을 바라보면 누구나 까닭 모를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머릿속 섬마을 정경은 아담하고 청순하기만 한데,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도 유별날 것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여름날의 섬은 뭍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섬은 설렘의 준말인지도 모른다. 사전상 어원 미상의 단어에 조그만 낭만 하나 더하는 일이 그리 과한 처사는 아닐 듯싶다. 때 이른 여름에 해수욕장들이 개장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달력에 표시된 여름휴가일 수를 헤아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서해안엔 피서객만큼이나 섬들도 많다. 대천해수욕장으로 이름난 충남 보령시와 면한 바다 서쪽 끝에 볼거리도, 이야깃거리도 많은 섬 하나가 툭 떨어져 있다. 멀기는 멀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이의 거리보다는 가깝다. 원래 집에서 바깥으로 첫 발걸음을 떼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멀어도 당당한 전국구 ‘외연도’

외연도(外煙島)는 충남 보령시에 속한 78개섬 중 가장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섬이다. 섬은 늘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다.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53㎞ 떨어진 외연도는 쾌속선으로도 꼬박 1시간30분을 내달려 가야 닿는 고도(孤島)다. 갑판 위에서 지루함이 깊어질 때쯤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섬을 바라보면, 뭍에서 까마득히 멀어 연기에 가린 듯하다는 섬의 이름이 쉽게 이해된다. 바람이 잠든 새벽이면 저 멀리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거짓말 같은 전설이 솔깃해진다. 외연도는 오도ㆍ중청도ㆍ대청도ㆍ외횡견도 등 유ㆍ무인도 10여개 남짓 섬을 거느리며 자그마한 열도를 이루고 있는데, 그 규모에 비해 담긴 내용물이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2008년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소개된 이후 외연도는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그야말로 ‘전국구’ 반열에 올랐다.

마을은 섬의 동쪽 봉화산(273m)과 서쪽 망재산(171m) 사이의 중심부에 오목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민에 따르면 175호, 350여명이 거주 중이라는데 조업 기간을 사이에 두고 유동인구가 많단다. 맑은 물과 풍부한 어족자원 덕분에 어장이 발달해 십수년 전만 해도 포구는 외지에서 온 어부들로 들끓었다. 포구에 돈이 돌자 술집도 따라 들어왔다. 어여쁜 술집 누나들의 웃음에 섬마을 아이들의 마음까지 덩달아 설레었을 터이다. 예전같지 않은 어장 때문에 당시의 화려한 흔적은 포구에서 사라졌지만, 고요한 마을은 고요한 대로 넉넉해 보였다.

마을 담장 곳곳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벽화에 한눈팔며 걷다 보면 마을에 하나뿐인 학교 ‘외연초등학교’에 닿는다. 아담한 교정에 부속 유치원생 2명을 포함해 총 22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마을 주민 상당수가 초등학교 동창이자 선후배들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교정에서 공부하고, 같은 장소로 봄ㆍ가을 소풍을 떠났다. 유치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몇 명 더 있어 아직 폐교를 걱정할 일은 없단다. 대를 이어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서쪽 외진 섬까지 찾아와서 바라보는 낙조는 길어서 더욱 각별하다. 서녘 하늘에 매달린 태양은 못이라도 박힌 양 꿈쩍도 않다가 어느 순간 뚝 떨어져버린다. 섬으로 돌아오는 작은 배들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며 섬그늘 아래로 파고든다. 섬의 하루는 그렇게 저문다.


천년의 이야기 간직한 상록수림

초등학교 옆 임도를 따라 오르면 외연도의 자랑인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36호)이다. 마을 뒤쪽 능선을 따라 형성된 상록수림엔 다양한 활엽수들이 뿌리 내리고 있는데 그중 동백나무ㆍ후박나무가 주된 수종을 이룬다. 특히 이곳의 오래된 동백들은 6월까지도 꽃을 피워 동백(冬栢)이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지금도 숲에선 동백꽃이 검푸른 그늘 아래로 송이째 툭툭 떨어진다. 지나간 계절의 흔적을 붙드는 동백나무는 찾아오는 이들의 발걸음도 한참 동안 붙든다.

상록수림의 수많은 나무 중 동백나무 ‘연리지(連理枝)’는 전국적인 슈퍼스타였다.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형이다. 지난 2010년 태풍 ‘곤파스’가 섬을 할퀴었을 당시, 상록수림도 곳곳에 생채기를 입었다. 연리지 역시 안타깝게도 태풍의 직격탄을 맞아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태풍이 아니었어도 연리지는 고사(枯死)할 운명이었다. 연리지 사이를 통과하면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연인이 나무 아래를 오갔다. 잦은 답압(踏壓)은 나무뿌리의 호흡을 방해했다. 심지어 연리지에 매달려 ‘인증 샷’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 나서 부러진 가지를 다시 잇는 등 긴급 조치를 취했지만 연리지는 결국 생명을 잃고 말았다. 이제 더는 연리지 사이를 오가는 연인은 없지만, 연리지는 고사함으로써 겨우 안식을 찾은 듯했다.

상록수림 내엔 외연도의 수호신 ‘전횡(田橫) 장군 사당’이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전횡은 제(齊) 나라의 왕제(王弟)로, 한(漢) 고조(高祖)에 대항하다 5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외연도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들을 뒤쫓아온 한 고조는 전횡에게 항복과 전멸 중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명예도 버릴 수 없었고, 섬사람들의 희생도 원치 않았던 전횡은 자결을 택했다. 이에 감동한 섬사람들은 자결한 전횡을 섬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지금까지 제를 지내고 있다.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허구인지 경계가 불분명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애틋한 옛 이야기 앞에 진실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부질없어 보였다.


서쪽끝에서 마주하는 장엄한 낙조

상록수림에서 빠져나오면 내리막길 언덕을 따라 너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타조알처럼 커다랗고 매끈한 몽돌이 바닥을 환하게 비치는 맑은 바닷물에 적셔져 황혼에 반짝인다. 해변의 이름 ‘명금’은 과장이 아니다. 일몰의 고갯길을 돌아 매바위ㆍ상투바위ㆍ여인바위 등 섬을 둘러싼 기암괴석들의 이름을 헤아리다 보면 바다는 쏟아지는 ‘낙조’로 물들고, 섬 그늘은 수면 위로 짙게 퍼져나간다. 조업을 마친 어선 몇 척이 밀물을 따라 들어와 다시금 삶의 기쁨과 슬픔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섬의 하루도 그렇게 저문다.

정진영 기자/123@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