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읽은 소설집 중 가장 아픈 작품이다.
이 소설집은 1980년 5월에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이 지금까지 어떤 형태의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있는지 전한다.
무자비한 고문의 후유증이 남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주변인을 괴롭히고 스스로 삶을 등지는 사람들, 의도치 않게 비극의 중심에 섰거나 혹은 주변부에서 떠돌던 사람들의 생생한 고백이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여기에 생생한 호남 방언이 읽는 맛을 더하고, 실제 유가족과 시민의 증언이 소설에 현장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비극의 상처와 아픔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누군가를 무작정 매도하거나 연민하지도 않는다.
그저 소설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40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볼 뿐이다.
먼저 흥분하거나 울지 않는 작가의 태도는, 독자가 비극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며 성찰할 수 있게 한다.
7년 전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 추모가 지겹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40년 전에 벌어진 비극을 아직도 추모하는 게 지겹다는 말이 나온 지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
작가는 40년이 지났든 그보다 오랜 세월이 지났든 비극을 추모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고 소설로 말한다.
아직도 당시 비극을 기억하고, 그 비극으로 상처 입은 수많은 사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그랬듯이, 소설은 기억과 역사에 생명력을 더하는 방식 중 하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런 작업을 해온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p.s. 이 소설집에 담긴 단편의 대화를 인용한다.
이 대화가 지금까지 당시의 비극을 매도해 온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그때는 나도 대학을 이 년 댕겼던 때라서 뭘 쪼매 알긴 알았지. 뭣이 옳은 것인지 알긴 알겠는데 요상하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라. 그냥 빨갱이 새끼들로 매도해 뿌리는 기 내 맘이 편했든 기지. 그라이까네 뭔가 복잡한 생각이 일어날라카는 기를 단순한 걸로 덮어 뿐 거라. 와? 내 편할라꼬, 내 자존심 안 상할라꼬, 내 꿀리기 싫어가. 이때껏 그냥 쭉 그래 살아왔던 기라. 그라면서 또 홍어들을 짓밟았지. 너덜언 내 진실의 거울 같은 존재거던. 거울이 깨져 삐야 내 진실이 비치지 않을 거 아이가."(92~93페이지 '생선매운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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