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상은 늘 씁쓸하다.
그런 상상은 보통 현재의 나에 만족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나는 주로 과거의 나를 윽박질러 현재를 바꾸는 상상을 했다.
연애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굳이 모든 사람에게 좋을 사람일 필요는 없다, 먹지 못하는 사과를 파는 회사의 주식을 사야 한다, 비트코인을 열심히 채굴해라, 영끌해서 어떻게든 서울 내 아파트를 장만해라 등...
이 작품은 그런 상상을 현실로 끌어왔다.
그렇다고 이 작품 속 상상이 내 상상처럼 속물적이란 말은 아니다.
이 작품은 30대 직장인인 '태희'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태희는 자신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회사 조직과 배신한 연인 때문에 자존감을 잃은 상태다.
지친 태희가 별생각 없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가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닿고, 어린 시절의 자신이 쓴 답장이 현재의 주인공에게 닿는다.
설정만 보면 타임슬립물인데, 읽으면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주인공과 현재의 주인공은 자신이 받은 편지가 자신이 쓴 편지란 걸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너그럽게 읽으면 영화 <러브레터>처럼 이름만 같은 누군가에게 서로의 편지가 닿는 설정이라고 우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이 넘은 뒤,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어린 시절에 나는 어른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탄탄한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의 나는 10대, 20대, 30대 때와 다를 게 없다.
달라진 건 나이 든 몸뿐이다.
50대, 60대, 70대가 돼도 몸만 늙어갈 뿐 몸 안의 내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삶의 방식이 극적으로 달라질 리도 없으며, 딱히 세상에 의미 있는 무언가가 될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은지 의문에 사로잡힐 때가 종종 있는데, 작품이 꽤 위안이 됐다.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고.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꼭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우리는 늘 미련을 쌓고 후회를 반복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마주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작가는 태희의 입을 빌려 사려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나와 성이 다르지만 이름은 같고, 나이도 같다.
작품 속 태희의 고민은 어쩌면 작가의 고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어린 시절 친구로부터 너는 너대로 그냥 살아도 괜찮다는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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