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잃고, 사고로 자녀를 잃고, 연인을 자살로 떠나보내는 등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들은 저마다 어딘가를 걷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아픔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만 실패한다.
'사라지는 것들'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남긴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무릎을 쳤다.
"엄마, 나...... 이제야 뭘 좀 알겠어. 알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제 자자.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자자."
작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도 살아갈 수밖에 없고, 또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고 말이다.
작가의 담담한 태도가 가볍지 않은 위안이 됐다.
연말에 지난 1년을 돌아보니 기뻤던 날보다 그렇지 않았던 날이 훨씬 많았다.
지금까지 매년 그래왔고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갈 것이다.
나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때로는 적당히 윤색돼 좋은 기억으로 바뀌기도 하니 말이다.
산책은 내 머릿속 나쁜 기억의 농도를 줄이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가끔은 기가 막힌 문제 해결 방법이 산책 중에 떠오르기도 했다.
이 소설집을 읽고 마치 그런 산책을 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읽은 후 시간이 흐를수록 곱씹게 되는 내용이 더 많아지는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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