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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변윤하 장편소설 <그림자 상점>(앤드)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1. 12. 31.

 



최근 한국 소설 신간을 살피는 동안 눈에 띄는 현상은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한 치유계 소설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현재 소설 베스트셀러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미예 작가의 장편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김호연 작가의 장편 <불편한 편의점>이 대표적이다.
김초엽, 천선란 작가 등이 보여준 소프트 SF도 넓게 보면 치유계 속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불편한 편의점>이 무슨 환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느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그런 골목에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설정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판타지 아닌가.
각설하고, <그림자 상점> 또한 이 같은 흐름에서 나온 치유계 소설 중 하나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림자를 세 개나 가진 주인공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끝에 그림자 둘을 스스로 끊어낸다.
평범해졌다는 생각은 잠시, 끊어냈던 그림자 둘이 2년 후 사람이 돼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림자 둘은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장소인 '그림자 상점'을 찾아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두 그림자가 '그림자 상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그림자는 관용적으로 아픔이나 상처를 은유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주인공이 두 그림자와 함께 하는 여정은 아픔과 상처 너머에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아픔과 상처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으며, 용기를 내 이를 직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한다.
상상 속의 세계를 묘사하는 문장이 생생해 머릿속에 쉽게 장면이 그려졌다.
페이지 여러 곳에 소설 속 장면을 묘사한 흑백 삽화가 담겨 있는데, 채색 삽화보다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상상을 돕는다.

새 소설을 쓰지 않을 때면 신간을 많이 사서 챙겨 읽고 가능한 한 흐름을 파악하려 애를 쓰는 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건 작가로서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요즘 어떤 소설이 세상에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문학계에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듯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도 창작자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을 이 작품을 통해 받았다.
균열은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날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