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이후 지하로 파고든 인류.
평생 일해도 갚기 어려운 세금을 짊어진 채 절망하며 마약에 중독된 복제인간.
지금의 삶 외에는 다른 삶을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채 착취당하는 그들을 철저하게 도구로 이용하는 엘리트.
작가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복제인간이 각성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리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질문을 던진다.
아울러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있는 주변 인물들이 이 질문 앞에서 저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부조리와 엘리트의 독재를 무너뜨리는 힘은 연대다.
이 작품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구성원이 존엄을 지키는 일은, 소수의 엘리트에 합류하고자 노력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메시지는 날카롭지만, 곳곳에서 기시감이 느껴져 신선함은 덜했다.
문명과 야만이 기형적으로 공존하는 디스토피아는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를, 복제인간의 등장으로 만들어진 신분제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했다.
사회 구성원 다수를 우매하다며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엘리트의 모습에선 "대중은 개돼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내부자들>이 연상됐다.
이 작품 바로 전에 나온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인 해도연 작가의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어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이 작품은 당분간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이 될 듯하다.
연초에는 봄에 발표할 단편을 쓰고, 상반기에 발표할 장편을 다듬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p.s. 여담인데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 두 가지 실수가 유난히 커서 눈에 띄었다.
35페이지 맨 아래에 두 문장이 이유 없이 중복된다.
105페이지에도 줄 바꿈에 오류가 있다.
이 밖에도 자잘한 오타가 꽤 보였는데 체크를 못 했다.
2쇄를 찍는 날이 오면 부디 꼭 고쳐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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