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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퇴사 만 2년 째를 맞은 소회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2. 28.

 

2년 전 오늘 문화일보에 사직서를 내며 11년 기자 생활을 마쳤다.
월급쟁이에서 벗어난 지 벌써 2년이나 흘렀다니 놀랍기만 하다.

당시 퇴사할 때 나는 전업 작가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때 생각은 "일단 1년만 버텨보자!"였다.
전업 작가는 업계 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현재 한국 출판시장에서 1쇄를 소화하는 문학 단행본이 10권 중 1권도 안 되는데, 1쇄를 다 팔아도 작가가 손에 쥐는 인세는 한 달 월급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내가 작가로 수명을 오래 이어갈 방법은 인세가 아닌 다른 곳에 있어 보였다.
퇴사 당시 내 장편소설 <침묵주의보>의 드라마 제작 결정이 된 상황이었다.
판권료는 내가 작품을 20쇄는 넘게 팔아야 받을 수 있는 인세와 맞먹었다.
작품 판권을 더 팔면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한 첫해인 2020년에 내가 세운 계획은 정말 쓰고 싶었던 장편소설 하나, <침묵주의보>처럼 판권을 팔 가능성이 있는 소설 하나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완성한 게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와 <젠가>였다.
<젠가>는 의도대로 출간 이후 드라마 판권이 팔려 2021년에도 작가로 버틸 수 있게 해줬다.
만약 <젠가>의 드라마 판권이 안 팔렸다면 2021년에 밥벌이를 할 다른 직장을 찾았을 것이다.

2021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작가로 수명을 오래 이어갈 방법은 인세나 판권 판매가 아닌 다른 곳에 있어보였다.
바로 단편소설을 꾸준히 써서 발표하는 일이었다.
장편소설을 써서 출간하는 작업은 다음을 기약해주지 않는다는 걸 여러 차례 느꼈다.
내가 이번에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운이 좋아 판권을 팔았어도, 다음 장편소설의 출간과 판권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단편소설이었다.

내가 여러 차례 여기에 언급했듯이 한국 문학의 주류는 단편이고, 유력 문예지 지면을 통해 발표된 단편으로 업계(문단이라고 불리는)에 이름을 알려야 장기 생존이 가능하다.
유력 문예지 및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 - 문예지에 단편소설 발표 - 문학상 수상 - 주요 문학 출판사와 연결이라는 순환 구조에 편입해야 작품으로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오래 작가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걸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유력 문예지 및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첫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1년에는 새 장편을 쓰는 한편, 단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문예지의 유리천장을 넘어보려고 애를 썼다.
내게 청탁하는 문예지는 아무 데도 없었고, 투고하는 단편은 늘 까였다.
유리천장을 넘는 일은 장편을 집필하고 출간하는 일보다 훨씬 어려웠다.
내가 아무리 여러 장편을 출간하고, 큰 상금을 주는 문학상을 두 차례 받고, 드라마 판권을 두 작품 팔았어도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그때 내가 '천출'임을 실감했다.

2022년은 지난 2년간의 내가 구사했던 전략을 종합해보려고 한다.
지난해 세웠던 전략의 결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여러 문예지에서 수도 없이 까였고, 지금도 수도 없이 까이고 있지만, 우여곡절 끝에 문예지 두 곳의 지면 청탁을 받아냈다. 
우선 3월 중 새 단편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 작품이 유리천장을 뚫는 물꼬를 터주기를 바라고 있다.
조만간 새 장편을 또 내놓고, 또 먼 곳으로 떠나 새 장편을 쓸 예정이다.
올해 말에는 예정대로라면 산문집도 나온다.
그리고 여기저기 또 단편을 투고하고 까일 예정이다.

올해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가 된다.
퇴사 후 얼마 못 버티고 백기투항할 줄 알았는데, 2년 동안 이만하면 잘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