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대에 가벼운 유희가 불러온 심각한 나비효과에 휘말린 등장인물들.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이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짐작하기 어렵게 하는 정교한 구성이 돋보였다.
최근에 읽은 장편소설 중에서 가장 치밀했다.
날이 선 문장이 아닌데도 책을 덮을 때까지 일정한 강도의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전에 훨씬 많은 장편을 썼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몇 년 전에 샀지만 일부러 피해왔다.
이 작품은 제23회 문학동네소설상 본심에 내 장편소설 <침묵주의보>(공모 당시 제목은 <짖는 개가 건강하다>)와 함께 올랐었다.
데뷔 후 7년 동안 신작을 내지 못했고, 단 한 번도 작품 청탁을 받지 못했던 나는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침묵주의보>를 밀어내고 수상한 이 작품과 문학동네에 화가 났었다.
얼마나 잘 써서 수상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데, 막상 책 표지를 보니 페이지를 넘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침묵주의보>보다 훨씬 좋은 작품일까 봐 두려웠다.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앞으로 더 소설을 쓰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나중에 <침묵주의보>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몇 쇄를 추가로 찍고 덤으로 백호임제문학상도 받을 때, 나는 문학동네를 속으로 무척 비웃었다.
내걸 뽑았으면 훨씬 재미를 봤을 텐데 멍청한 선택을 했다며 말이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교차했다.
몇 년이 흐르니 이제는 이 작품을 읽어도 아무렇지 않을 듯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심사위원이었어도 이 작품에 상을 줬을 테다.
만듦새를 비교해 보니 <침묵주의보>가 나댈 작품이 아니다.
나는 이 작품처럼 세공한 보석을 닮은 장편을 쓸 자신이 없다.
다만 읽는 재미는 <침묵주의보>보다 훨씬 떨어졌다.
줄거리를 요약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성과 뒤늦은 소재(80년대 군사정권)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가 많진 않았을 테다.
평범한 독자보다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나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만한 작품이다.
나 역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필력이 부러웠으니 말이다.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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