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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심재천 장편소설 <젠틀맨>(한겨레출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5. 2.



조직폭력배 말단 조직원이 우연한 계기로 명문대 학생으로 신분을 세탁하는 과정 묘사에 개연성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홍콩 누아르를 방불케 하는 뒷골목과 폭력 묘사, 아슬아슬한 심리 묘사가 부족한 개연성을 덮는다.
어딘가 조폭답지 않은 섬세함을 지닌 주인공의 모습이 매력적이고 또 애잔해서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후반부의 반전도 책을 덮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읽는 내내 눈앞에 영상이 그려졌다.
드라마보다는 영화로 만들어지면 무척 개성적인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거두절미하고 잘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여기서부터 주의! 작품과 관련 없는 썰이 훨씬 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2011년은 한국소설 시장에서 꽤 독특한 해였다고 자평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는데, 당시에는 큰 상금을 내건 장편소설 공모가 적지 않았다.
그중 한겨레문학상, 중앙장편문학상,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을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현직 기자가 수상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는 이젠 명실상부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동아일보 출신 장강명 작가였고,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는 이 작품을 쓴 세계일보 출신 심재천 작가,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수상자는 나였다.
당시 장강명 작가는 다른 작품으로 조선일보판타지문학상 본심에도 올랐던 터라, 문학상 다관왕 경력을 몇 년 앞당길 뻔했다.
그랬다면 내가 데뷔하는 일은 없었겠지.

안타깝게도 문학동네소설상, 한겨레문학상 등 일부 공모 외에 장편소설 공모 다수가 사라졌다.
오랫동안 당선작 중에 히트작이 별로 없었다는 게 큰 이유일 테다.
내가 아는 한 장편소설 공모작 중 마지막 히트작은 2013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김호연 작가의 <망원동 브라더스>다.
그 이후에 나온 모든 수상작이 죽을 쒔다.
그 이전에도 2004년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천명관 작가의 <고래>, 2005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김별아 작가의 <미실>, 2006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박현욱 작가의 <아내가 결혼했다> 정도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을 뿐이다.

상금도 회수 못하는 공모전을 오래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테다.
장편공모로 데뷔한 작가들이 한국문학 시장에서 홀대받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단편이 주류를 이루는 기형적인 문학시장도 이유일 테고.
그러다 보니 장편공모 당선 작가가 빠르게 후속작을 내거나 단편 청탁을 많이 받아 시장에 안착하는 경우가 드물다.
장강명 작가만 해도 투고를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장편 공모 도전에 다시 뛰어들어 상을 휩쓴 뒤에야 주목받지 않았던가.
나 또한 데뷔작 이후 후속작을 내는 데 7년이나 걸렸고.

뒤늦게 이 작품을 읽으며 작가 또한 나처럼 작품 활동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이 작품 또한 나처럼 작가가 데뷔작 이후 7년 만에 출간한 후속 장편소설이니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 작가의 신작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