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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정한아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문학동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5. 20.


우리의 삶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종의 연극과 비슷하지 않을까.
5년 동안 서재에 묵혀 구간이 된 이 작품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평생 신분을 속이며 살아온 여자 '이유미'의 행적을 추적하는 주인공의 여정이 작품의 큰 줄기다.
주인공은 결혼 후 출산해 몇 년째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인데, 우연히 이유미가 자신의 미발표작으로 소설가 행세를 하고 다녔음을 알게 된다.
추적 끝에 드러나는 이유미의 인생사는 기가 막히다.
가짜 대학생이었다가 피아노 학원 강사였고, 대학에서 평생교육원 강사로 일하다가 교수로 임용됐으며, 요양병원 의사 행세도 했었다.
이유미는 결혼도 세 차례 했는데 심지어 이름을 바꾸고 남성 행세를 하며 여자와 산 일도 있었다.

인정 욕구와 그 욕구를 받쳐주지 못하는 가정사가 빚어낸 무리한 거짓이었지만, 놀랍게도 이유미는 들키기 전까지 모든 거짓 신분을 성공적으로 유지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거짓이었고, 때로는 거짓이라고 볼 수 없는 무언가도 있었다.
반면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온 주인공의 삶은 거짓이 아닌데도 거짓처럼 위태롭다.
이 작품은 그 둘의 삶을 번갈아 보여주며 우리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게 정말 진짜인지 묻는다.

자연스럽게 십수 년 전 사회에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여러 유명 인사의 학력 위조 사건이 떠올랐다.
그들 대부분은 학력 위조가 드러나기 전까지 자신이 활동해 온 영역에서 실력자로 인정받아왔다.
학력위조가 대중을 기만한 행위임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남긴 모든 행적을 부정할 만큼 배경이란 게 중요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배경이 가짜인 실력 있는 사람과 배경만 진짜인 실력 없는 사람 중 진짜에 가까운 사람은 누구일까.
이 작품은 우리가 배경에 얼마나 약한 존재이며,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를 묻게 해줬다.
읽는 내내 누군가가 내 뒤를 쫓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고 가독성도 대단히 훌륭하다.
재미와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은 좋은 장편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