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월세를 전전하다 무리한 대출을 껴서 마련한 근생 빌라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중소기업 근로자.
북한 부동산에 투자한 뒤 통일만 기대하며 거리로 나서는 태극기 부대 노인.
자신도 정체를 모르는 독극물을 땅에 묻는 공공기관 하청업체 직원.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박카스 아줌마
생리 도벽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 받은 뒤 절도로 삶을 이어가는 초로의 여인.
자신이 개발한 철 지난 청소기를 팔러 다니는 연구원 출신 외판원.
이 소설집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혹은 보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삶을 깊게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성실하게 살았지만, 내리막길 밖에 보이지 않는 인생이다.
현재 머무는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는 삶.
작가 본인의 경험에 탄탄한 취재를 바탕에 둔 간접 경험이 깊게 녹아 있어 소설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실감난다.
작가는 축축한 곰팡내가 짙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웃프게 그려내는 전략으로 심각함을 덜어내고 재미를 더한다.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이 눈에 쏙쏙 들어와 가독성을 높인다.
이 소설집에 실린 6편의 단편을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등장인물 모두 남들보다 조금 기회가 적었고 운도 따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공통점이 나비효과처럼 이들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 또한 삐끗하면 저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웃픈 연출로 감추기 어려운 살벌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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