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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송경화 장편소설 <민트 돔 아래에서>(한겨레출판)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2. 10. 6.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의 후속작이다.
옴니버스 형식이었던 데뷔작과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장편소설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다루는 깊이도 데뷔작보다 깊어졌다.

작가는 인사청문회, 법안 심사, 국정감사, 예산 심사, 당 대표선거, 지방선거, 대선까지 정치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취재 현장을 두루 다루며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따라간다.
대한민국의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정독하면 된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나도 이 작품을 읽은 뒤에야 현직에 있을 때 몰랐던 정치부 기자의 일상에 관해 자세히 알았다.
작품 곳곳에 반전이 지뢰처럼 박혀 있어 느닷없이 읽는 재미를 준다.
현직에 있을 때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는데, 왜 그런지 이 작품을 읽고 실감했다.
정치부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기자가 정치판을 흔드는 특종을 마구 쏟아내는 먼치킨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소설만의 재미로 이해하자.

이 작품에서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 내용은 기업이나 정치권으로 이동한 기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기업 홍보실로 이동해 불리한 기사를 막으려 후배 기자에게 로비하고,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사를 쓸 때 눈치를 보는 선배 기자들의 모습.
몇 년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가방 모찌를 했던 인물이 떠올랐다.
그 인물은 삼성의 상무급 임원이었는데, 삼성에 비판적인 언론사에서 활약했던 기자 출신이다.
어디 그뿐인가.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기자도 있었는데.
자신이 한참 선배라며 내게 은근히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기자 출신 모 기업 홍보실 직원의 얼굴도 간만에 생각났다.

이 작품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지금까지 조직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비슷했다.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정의로웠으며, 적당히 나빴고, 적당히 비겁했다.
기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개중에는 '구악'으로 불리는 쓰레기 같은 인간도 있었지만, 어느 조직이든 그런 인간은 있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과 마찬가지로 그런 군상의 모습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얼마든지 자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 소재를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언론사의 주요 부서는 이른바 '정경사'로 불리는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다.
'정경사'는 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다루는 부서인데, 이들 부서를 두루 거쳐야 편집국장과 같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편집부, 문화부, 체육부, 국제부, 교열부, 지방부, 온라인부 등은 사내 권력에서 먼 부서다.
문화부를 더해 '정경사문'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만, 사내 권력은 어디까지나 '정경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경제부와 산업부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사회부가 한직인 경제지에서도 정치부의 위상은 상당하다.

나는 '정경사문' 중 '정'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기자에게 부서 이동은 이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언론사에선 부서 간 업무가 확연하게 다르다.
정치부 경험을 전혀 해보지 못한 나는 이 작품의 내용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기자가 발휘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 훌륭한 직업물이었다. 

'시마' 시리즈처럼 후속작이 계속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면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