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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하율 장편소설 <어쩌다 노산>(은행나무)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4. 25.

 



저출산을 우려하는 뉴스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기혼자와 미혼자를 나눠 판단해야 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혼인 대비 출산 비율은 1.3명이다.
2023년 합계 출산율 0.72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통계로 확인할 수 있듯이 기혼자는 여전히 아이를 낳으려는 경향이 크다.
다만 만혼 비율이 매년 높아지다 보니 과거보다 난임 부부와 노산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작품은 그중 노산에 관해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를 갖게 된 작가의 경험담을 그린다.
주인공 이름이 대놓고 작가 본명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늦게 결혼해 난임 전문 병원에 다니며 어렵게 첫째를 가졌는데 둘째는 자연임신, 그것도 '고오령' 임신이라니.
첫째를 손이 조금 덜 가게 키워놓고 슬슬 자기 일을 해보려는 계획은 틀어졌는데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니 산넘어 산이다.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인데도, 작품의 전체적인 톤은 시트콤처럼 유쾌하다.
온갖 자학과 농담과 드립이 난무하는 가운데, 작가 본인이 경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디테일이 생생해 눈길을 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의 고충, 임산부의 심리, 미지의 공간인 산후조리원에서 벌어지는 일 등을 남자인 내가 무슨 수로 알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작품은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엄살을 떨지만, 그래서 계획하지 않았던 기쁨을 만날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경험자의 여유다.
늘 오가던 길도 새로운 골목을 거쳐 가면 여행처럼 흥미롭지 않던가.
실패했든 성공했든 모든 경험이 소설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작가는 참 좋은 직업이다.
새삼 소설이 다른 이의 삶을 간접경험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값싼 수단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소설 속의 소설(장르가 다채롭다)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느낌적인 느낌인데 그중 일부는 나중에 새로운 단편이나 장편의 씨앗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벌써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 작품과 더불어 지난해 이맘때 출간된 김의경 작가의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를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노산을 다룬 이 작품과 난임을 다룬 <헬로 베이비>를 교차해 읽으면 대한민국에서 출산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지형도가 그려질 테니 말이다.
소설은 종종 정부 기관이 작성한 그 어떤 보고서보다 생생하고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