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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김보영 연작소설 <종의 기원담>(아작)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4. 4. 17.

 



"걸작이다..."
뒤늦게 이 작품을 읽고 든 생각이다.
문목하 작가의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 이후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한국 SF다.

이 작품은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로봇인 세상을 배경으로 살아있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를 철학한다.
작품 속에서 로봇은 당연히 자신을 생물이라고 여기고,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오염된 환경이 로봇에겐 최적의 환경이며, 산소와 유기물질은 로봇에게 위협이 되는 오염원이다.
지금 우리가 생존 문제라고 여기는 게 과연 다른 종에게도 문제일까?
작품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로봇의 시선과 심리를 집요하게 쫓으며 자아와 생존을 고민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모조리 뒤집어서 낯선 세상을 보여주는데, 그 세상이 낯설지 않아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감탄했다.
로봇을 인간으로 바꿔 읽으면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변하니 말이다.
차별 문제, 종교 문제, 환경 문제 등등.

인간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로봇이 다시 인간을 되살려내 로봇의 멸망을 초래하는 순환을 바라보며 왠지 모를 경이감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는 로봇을 보며 떠올린 문장은 <아함경>에서 부처가 말한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였다.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