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봄, 고향에서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에 있는 고시원으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였다.
20대 전부를 함께 했던 연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날에도 나는 반지하 원룸을 청소했다.
이 산문집에 담긴 문장 "어떻게 '여자들'은 항상 더러워진 것을 바꿀 힘이 있을까(마이아 에켈뢰브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와 이에 얽힌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방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으며 괴로움을 삭이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청소를 하곤 했다.
생활 공간이 어지러워지면 마음도 어지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소는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해준 일종의 의식이었다.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이 여러모로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산문집은 고전, 애니메이션, 문학, 산문집, 드라마 등에서 발췌한 100가지 문장을 재료로 삼아 작가가 삶을 통해 깨달은 긍정적 사고의 힘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때로는 자학하고, 때로는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긍정적 사고가 작가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창작 활동을 하는 독자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을 터다.
편집자가 굳이 출판사로 작가를 불러 망신에 가까운 피드백을 전할 때 작가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한 가지 비결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서 싸우는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새기며 와신상담하고, 언제나 상상 그 이하를 보여주는 인세 앞에서 "체념이란 하루하루 자살하는 것과 같다"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을 새기며 전의를 다진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좌절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다음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차차차를 추는 것"(로버트 브롤트)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쓰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게 건강에 좋다"(앨라니스 모리셋)는 말도 쉽게 넘기기 어렵다
자기 확신이 부족할 땐 "긍정은 길을 찾는다"(UCLA 모토)와 "괴물은 실재한다. 유령 또한 실재한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살고 있고 때로 우리를 이긴다"(스티븐 킹) 같은 문장과 작가의 경험이 꽤 힘이 퇼 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안과 함께.
가장 마음속에 깊이 들어왔던 문장은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려라"(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였다.
공저를 빼고 내 이름으로 낸 단행본이 10권인데, 대놓고 베스트셀러라고 말할 작품이 솔직히 하나도 없다.
초쇄나 소화하면 감사할 일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의기소침해지는데, 이 산문집을 읽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집적거려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더불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응원해 그 복을 나눠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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