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목장'이라는 흔치 않은 공간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세 주인공은 저마다 드러나지 않은 사연을 가진 채 '수목장'이라는 직장에 모여 인연을 맺는다.
같은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가깝고도 멀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하게 여기는데, 굳이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하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관계여서 어려운 일을 함께 치르면 누구보다 끈끈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그저 그런 관계로 시작한 세 주인공이 서로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면서 깊은 유대 관계를 쌓는 과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끝까지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수목장 사장, 늦은 밤에 종종 벌어지는 암장, 비극적이면서도 의문이 가득한 죽음...
이렇게 말하니 무슨 범죄 소설 같은데, 그렇게 보였다면 오해다.
내용이나 결은 다르지만 김훈 작가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작품 전반에서 느껴지는 감정선의 기복이 잔잔한데, 그 잔잔함이 쌓여 만들어지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나무 냄새와 풀냄새가 느껴졌고, 안타까운 죽음을 다루는 깊은 시선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여러 죽음을 앞에서 사연 많은 세 주인공이 각자의 상처를 극복하고 삶의 희망을 찾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게 최선이었을까.
주인공과 등장인물 모두 희망을 찾고 행복해지긴 했지만. 이런 식의 해피엔딩을 기대하진 않았는데.
초중반과 후반은 서로 다른 장르의 소설 같았다.
독자마다 취향이 다르니 이런 엔딩을 좋아할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영화 「파묘」의 후반부를 보고 느꼈던 허탈함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초중반의 분위기가 끝까지 이어졌다면, 훨씬 큰 작품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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