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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정명섭 소설 『조종자』(꿈꾸는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5. 5. 22.

 



핵전쟁으로 자멸한 인류는 지구 대신 갈아탈 새로운 행성을 찾는 데 성공하지만, 도망친 곳에는 천국도 낙원도 없다지 않은가.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듯 새로운 세계에서도 인류는 서로 반목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지의 괴물들이 살아남은 인류를 공격해 위기에 빠트린다.
그런데 일부 괴물이 인류를 보호하고 괴물을 공격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고,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필립 와일리의 SF 소설 『지구의 마지막 날(When Worlds Collide)』이 더 보여주지 않은 미래 세계(다만 비관적인)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 주인공이 더해지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극단적인 기후 변화, 그로 인한 환경 파괴 등 지금도인류를 위협하는 여러 문제를 낯선 환경에서 흥미롭게 펼쳐낸다.

이 작품을 읽고 엉뚱하게도 나는 오래전 훈련소 시절을 떠올렸다.
나는 고도 근시 때문에 신체 검사에서 4급을 받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만난 훈련병 중에 나처럼 신체 문제로 4급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장 내가 속한 내무반의 훈련병 20명 중에서 신체 문제로 4급을 받은 사람은 나뿐이었고,
19명은 학력 미달로 4급을 받았고, 신체가 현역보다 훨씬 건장한 녀석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생활'(조폭 조직원)을 하다가 끌려온 녀석이었다.
극단적으로 자유가 제한된 공간에 맹수들이 모였다.
나는 살면서 그때만큼 약육강식의 긴장감을 강하게 피부로 느낀 적이 없다.
법과 규칙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야만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간접 경험했다.
더불어 인간이 이렇게 밑바닥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었다.

인간성의 밑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때는 극한 상황에 처해있을 때 아니던가.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 묵직하다.
끝이 안 보이는데 남은 페이지가 많지 않아서 의아했는데, 다음 편도 나오는 모양이다.
주인공의 선택은 무엇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