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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조영주 소설·윤남윤 그림 『조선 궁궐 일본 요괴』(공출판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5. 7. 28.

 

 



작품이 다루는 소재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일본의 전설 속 요괴 '캇파'를 주인공으로 다룬 한국 콘텐츠가 이 작품 외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경회루에 오이밭이 있었다는 설정과 캇파가 오이에 환장한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는다.
여기에 삼신할매, 조왕신, 성주신, 측간신 등 한반도의 신화 속 존재들이 전통화풍의 풍성한 그림으로 재현돼 어우러지니 읽는 맛과 보는 맛이 함께 쏠쏠하다.

그보다 더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점은 또 다른 주인공인 조선의 왕 선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선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또 긍정적으로 묘사한 콘텐츠가 이전에 더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조와 더불어 암군의 대표주자 취급을 받아왔고, 심지어 왕자 시절에 받은 군호인 '하성군'이라고 부르며 왕 취급도 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선조, 참 입체적인 인물이다.
인성은 몰라도 능력 면으로는 조선에서 손꼽을 왕이라는 게 내 의견이다(다만 인조는 레알 암군이다).
당시 인재풀은 조선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었고, 선조는 그 인재를 알아볼 줄 아는 왕이었다.
용인술 하나는 조선 최고였다.
당장 이순신부터 선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중용되지 못했을 인물이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보여준 행동은 찌질하지 이를 데 없었지만 말이다.
임진왜란에서 보여준 행동은 정말 두고두고 까일 만한데, 그때 만약 재빠르게 분조하고 런을 치지 않았다면 조선이 종묘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임진왜란의 책임을 선조에게 온전히 돌리는 건 무리가 있고.
내가 여러 책으로 접한 선조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소시오패스 기질이 농후한 왕이었다.

인성과 별개로 선조는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명군 평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전 선조의 행적은 명군 소리를 들을 만했고, 왜란 후에도 전후 복구에 꽤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선조에 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작품을 한국형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러도 될까.
만화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를 책으로 읽는 듯한 친근한 느낌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