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후기

은정아 인터뷰 에세이 『어떤, 응원』(공출판사)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5. 7. 13.

 



내 읽기 습관과 쓰기 습관은 그리 건강하지 못한 편이다.
읽을 때는 읽는 일이 지겨워질 때까지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책을 읽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한두 달 읽고 나면 한동안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아진다.
마치 음식물이 목구멍 아래에 차오를 때까지 먹고 체한 사람처럼.
대신 미친 듯이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쓸 때는 낮과 밤도, 휴일도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지쳐서 나가 떨어진다.
그렇게 한두 달 쓰고 나면 한동안 아무 것도 쓰고 싶지 않아진다.
대신 미친듯이 무언가를 읽고 싶어진다.
마치 며칠 굶은 노숙자가 바깥에 놓인 짜장면 그릇을 미친 듯이 살피듯.
실제로도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장편소설 초고를 쓰면 살이 4~5kg은 기본으로 빠지는 걸 보니 말이다.

건강하지 못한 습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기분이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많이 읽거나 쓰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예전에는 많이 읽거나 쓰면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많이 읽거나 써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딱히 나은 사람이 되진 않았으니 말이다.
작년에 낸 장편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트리거였다.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많은 품을 들인 소설이었는데 반응이 미미했다.
소설 내용과 반대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많은 책을 살피다가 무심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았는데, 제목에 이끌렸다.
"그래도 너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이 책은 어떤 계기로 새로운 길로 들어선 여성 11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면 읽는 재미도, 감동도 덜 했을 테다.
이 책의 성격은 '인터뷰+에세이'다
인터뷰이 11명의 목소리와 삶에 작가의 목소리와 삶이 수시로 끼어든다.
그런데 끼어드는 태도가 전혀 성가시지 않고 오히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한다.
독특한 형식인데, 거부감 없이 읽힌다.
'사이다' 스토리나 대단한 성공담은 없다.
대신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있다.
저마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내 이야기 같은 친근함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얄팍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각자가 걸어온 긴 여정은 이력서 속 짧은 몇 줄로 모두 요약될 수 없다."(130p)는 문장이 책을 덮고도 오래 남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일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믿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자괴감에 시달릴 테고, 길을 잃은 기분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테다.
그래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외로움이 덜어진다.
적어도 읽는 동안만큼은 많은 응원이 돼줬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