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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황석영 장편소설 『할매』(창비)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6. 7. 4.

 

 



수백 년을 살아온 팽나무를 중심으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연대기순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분량이 많지 않은 소설임에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주는 호흡이 완전히 달라, 마치 전혀 다른 두 권의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반부에 펼쳐지는 자연 풍경 묘사가 압도적이다.
미문과 거리가 먼 담백한 문장인데도 묘사의 스케일이 웅장하고 넓었다.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하고 오래 눈을 멈출 때가 많았다.
특히 새를 다룬 서사 대목에선 괜히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그 압도적인 묘사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이미 책값은 아깝지 않다.

다만 후반부는 전작들을 떠올려볼 때 아쉬움이 남는다. 
얇은 두께에 비해 다루는 시간 범위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주목하기 보다는, 한 시대를 증언하는 데 등장인물을 도구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잦다.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서사도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끊임없이 신작을 내놓으며 건재함을 증명하는 작가의 행보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나 역시 이 나이에 현역으로 신작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간만에 큰 자극을 받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