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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최현미 저 『읽는 여성의 역사』(어크로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26. 8. 8.

 



인류 역사 속에서 여성이 읽기를 통해 자신을 비롯해 세상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연대기 순으로 살피는 책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텍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저자로서의 권위와 정체성을 확실히 주장한 인물이 여성이었음을 명확한 근거로 밝히고, 고대 로마와 중세 유럽을 지나 조선 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공간에 존재했던 '읽는 여성'을 하나하나 뒤쫓아 나간다. 
이 과정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사제 엔헤두안나부터 세헤라자데, 『겐지 모노가타리』에 열광한 일본의 소녀 독자, 살롱을 만들어 지성을 불러들였던 프랑스 여성, 브론테 자매와 버지니아 울프에 이르기까지 '읽는 여성'의 발자취가 얼마나 깊고 눈부신지 조명한다.

저자는 가부장제 사회가 역사적으로 여성의 독서를 오랫동안 '위험하고 불온한 행위'로 규정하며 통제하려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읽는 여성'은 골방에서 비녀를 팔아 소설을 빌려 읽거나 남장까지 감수하면서까지 텍스트를 향한 열정을 결코 멈추지 않았음을 근거를 들어 주장하며, 여성의 독서를 막았던 역사와 이에 굴복하지 않았던 역사가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그 치열한 읽기의 과정은 수동적인 텍스트 소비자에 머물던 여성들을 마침내 '쓰는 주체'로 스위치를 켜게 만들었다. 나아가 읽는 여성들은 서로의 글을 발견하고 지지하며 출판 시장과 문학 생태계의 판도를 바꾼 강력한 동력으로 거듭났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책 읽고 쓰는 사람이 누군지 보라. 나 같은 남성은 오히려 소수자인 세상이다.

'역사'라는 딱딱한 키워드에 매몰돼 읽기를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또 유익한 책이다. 예언하겠는데, 이 책은 연말연초에 여기저기서 인문 분야 추천 도서로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다. 읽기를 통해 세상의 금기에 균열을 내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간 여성들의 서사는 흥미로우면서도 숭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