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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앨범 리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너클볼 컴플렉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2. 11. 17.

이 앨범을 들으면 텅 빈 거리에 덩그러니 놓인 허름한 포장마차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빠진 소주잔 위로 그리운 사람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뭐 입안에 털어넣는 거지.

 

 

 

자정을 넘긴 포장마차 주변 풍경 같은 애잔함…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너클볼 컴플렉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너클볼은 손가락 관절(knuckle)을 구부린 채 공을 쥐는 투구다. 너클볼로 던진 공은 회전 없이 날아가는데, 실밥 때문에 불규칙한 표면을 가진 공은 공기의 저항과 부딪히며 불규칙한 궤적을 그린다. 이 때문에 너클볼은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타자에게 가장 까다로운 ‘마구’로 손꼽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을 야구에 빗대 노래하다 너클볼처럼 예고 없이 세상을 떠난 가수가 있었다.

지난 2010년 11월 6일,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으로 활동 중이던 이진원이 뇌출혈로 투병 중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모든 연주와 노래를 홀로 소화했던 이 가내수공업 아티스트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엔 많은 미발표 음원들이 담겨 있었다. 고인과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동료들과 친동생이 미발표 음원들을 하드디스크에서 끄집어 내 고르고 다듬어 ‘달빛요정’ 2주기에 맞춰 새 앨범 ‘너클볼 컴플렉스’(미러볼뮤직 발매)를 내놓았다.

 

 

 

 


 

이 앨범에 담긴 곡은 연주곡 3곡을 포함해 7곡, 의도치 않았던 유작인 3.5집 ‘전투형 달빛요정-프로토타입 에이’(2010) 이후 ‘달빛요정’이 발표하려 했던 3.7집과 4집, 솔로 앨범 수록 예정 곡들이다.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앨범의 문을 여는 짧은 연주곡 ‘그리운 그 사람’이 스치듯 지나가면, 떠나보낸 연인을 향한 뒤늦은 연가 ‘그리운 그 이름’이 흘러나온다. 담백한 연주에 실린 응어리진 목소리는 자정 무렵 고요한 포장마차 주변 풍경처럼 애잔하게 들려온다.

‘친구’는 어린 시절 친구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여전히 아픈 중년의 소심한 복수심을 노래한다. 지천명의 소년(혹은 소녀)은 과거로 돌아가 그 친구의 굽실거리는 모습을 미치도록 보고 싶은데,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스다라라 구다라라”라고 읊는 주문은 헛됨을 알기에 서글프다. ‘친구’는 ‘달빛요정’이 밴드와 녹음하기 전날 밤 쓰러지는 바람에 미완으로 남을 뻔했던 곡이다. 늦게나마 동료들의 수고로 곡이 완성됐으니 ‘달빛요정’의 주문 “스다라라 구다라라”는 나름 효험을 본 셈이다.

격정적인 연주곡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끝나면 앨범의 타이틀과 동명인 곡 ‘너클볼 컴플렉스’가 등판한다. 이 곡은 지난해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굿바이 홈런’에 삽입됐다. 영화는 만년 약체인 원주고 야구부가 기적처럼 전국대회 4강까지 오르지만 그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단 한 명의 선수도 지명 받지 못한 씁쓸한 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너클볼 컴플렉스’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의 찬란함을 노래하고 있다.

“느리다고 놀림 받았지. 게으르다 오해받았지. 그런 나를 느껴봐. 아직은 서툰 나의 마구를 꿈을 향해 던진다. 느리고 우아하게 찬란하게 빛나는 나의 너클볼. 나는 살아남았다. 불타는 그라운드 가장 높은 그 곳에 내가 서 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절망부터 배우는 세대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정이지 결과는 아니다’란 충고는 허무하다. 그러나 노래 한 곡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주는 기적은 흔치 않다. 노래는 잠시 동안의 위로면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그리고 ‘너클볼 컴플렉스’는 그 위로로 충분한 곡이다. 뒤이어 ‘그리운 그 이름’을 닮은 또 다른 뒤늦은 연가 ‘느리게’가 멈추면, 공간감 넘치는 기타 소리가 매력적인 짧은 연주곡 ’멋지게 끝내자’가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채운다.

인디 음악계에서 제법 인지도를 갖췄던 ‘달빛요정’이 연 수입 1000만 원 안팎의 팍팍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났단 소식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이야기와 맞물려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달빛요정’은 생전에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매스컴의 관심을 세상을 떠난 후 그것도 문화면보다 사회면에서 원 없이 누렸다. 그러나 과연 ‘달빛요정’이 생활고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었을까? 그가 남긴 음악은 이렇게 소박하고 포근하기만 한데 말이다. 김광석이 사람들에게 함께 쓸쓸해질 수 있는 기쁨을 나눠줌으로써 세대를 관통하며 살아가듯, 음악으로 남은 ‘달빛요정’ 역시 작지만 오랫동안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살아남을 것 같다. 음악은 원래 거짓말을 잘 못한다. 기자의 하드디스크에 담긴 오래된 자작곡들을 들춰봐도 그것은 진실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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