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으면 몰라도 자꾸 들으면 느껴진다.
십센치는 여전히 엉큼하다. 오히려 더 야해진 것 같다.
최고의 작품을 내놓았다고는 말을 못해도 대단히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란 사실은 곳곳에서 느껴진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데뷔 앨범으로 스타덤에 오른 뮤지션들에게 있어 두 번째 앨범은 예고된 지옥이다. 흥행 영화의 속편이 완성도와 관계없이 난도질의 대상일 수밖에 없듯, 오버나잇 센세이션(Overnight Sensation: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신인)의 다음 작품을 향한 입방아는 숙명이다. 데뷔 앨범과 비슷한 콘셉트의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식상하다는 혹평이, 색다른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초심을 잃었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데뷔 앨범의 영광은 대개 두 번째 앨범에겐 그림자로 돌아온다. 어느 쪽이든 감당해내야 할 지옥이다.
십센치(10㎝)는 두 번째 앨범 ‘2.0’ 역시 데뷔앨범과 마찬가지로 인디레이블(미러볼뮤직)을 통해 발매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만 아는 밴드에서 국내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그 좋다는 CF까지 꿰찬 이들에게 인디 딱지를 붙이는 일은 적잖이 민망한 일이다. 앨범 수록곡 전반의 때깔 고운 사운드와 시선을 잡아끄는 야릇한 재킷 사이에선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슈가팝에서 웰메이드팝으로의 변화가 얼핏 부담스럽다. 이 같은 변화의 간극을 폼 잡지 않는 가사가 메우고 있지만, 십센치 특유의 찌질하지만 솔직하고 경쾌한 감성이 풍성한 편곡에 가려 무뎌져 들려온다.
그러나 데뷔 앨범의 그림자를 걷어내면 십센치의 두 번째 앨범은 분명히 잘 만든 음악을 담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제 자신들의 나이를 계란 한 판으로 헤아릴 수 없게 된 십센치가 나이의 무게만큼 음악 자체에 진지한 욕심을 냈음이 앨범 곳곳에서 묻어난다.
첫 트랙 ‘그대와 나’의 소박함은 멜로디컬하고 공간감 넘치는 최근의 인디씬 모던 포크와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린다. 이 같은 선언은 두 번째 트랙 ‘파인 땡큐 앤드 유(Fine Thank You And You)’에서 극대화된다. 에이징(Ageing)된 마이크로 먼 곳에서 녹음된 듯한 비틀즈의 ‘렛 잇 비(Let It Be)’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인트로, 녹슨 픽업 위에서 울리는 듯한 기타줄의 떨림까지… 단순한 복고를 넘어 질감까지 재현한 이 곡에선 트렌디함 대신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오래된 것이 좋다)’에 꽂힌 십센치의 노정이 느껴진다. “너는 30평에 사는구나 난 매일 라면만 먹어”, “좋은 차를 샀더라 나도 운전을 배워” 식의 당혹스런 ‘돌직구’ 가사는 복고 사운드와 맞물려 자잘하게 흩어진 오래된 기억들을 쓸어 모으는 마력을 보여준다. 마치 오지 오스본의 ‘굿바이 투 로맨스(Goodbye to Romance)’처럼. 권정열의 끈적거리는 목소리에 실린 신파 ‘한강의 작별’에선 ‘뽕끼’보단 심수봉의 트로트 같은 일종의 격(格)이 앞선다. 9번째 트랙 ‘마음’의 “너의 마음을 은행에 맡겨 예금통장에 부을 수 있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의 마음이 불어나고”와 같은 가사에선 과거 70~80년대 포크음악의 문학적인 결이 느껴진다. 가장 십센치 답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10번째 트랙 ‘이제. 여기서. 그만’은 어쩌면 앞으로 다시 듣기 힘들 십센치의 록넘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하게 들린다.
1집 앨범과 비교해 가사의 수위가 낮아졌다는 것도 오해다.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른바 ‘섹드립’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1집 앨범처럼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 속엔 성인이라면 알만한 온갖 성적인 은유들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더욱 야하다. 보사노바 풍의 ‘냄새나는 여자’가 주는 공감각과 댄서블한 비트의 일렉트로닉 ‘오늘밤에’의 노골적인 가사와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내레이션도 야하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 가장 야한 곡은 ‘너의 꽃’이다.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예쁜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이어서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제목부터 가사까지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면 ‘19금 딱지’는 ‘오늘밤에’가 아니라 ‘너의 꽃’에 붙여져야 마땅하다. 이 또한 십센치의 의도였다면 그 주도면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젬베 빠진 사운드에 ‘길거리 정서’도 빠진 것 같아 아쉬움을 느끼는 팬들도 많겠지만, 대중적으로 다듬어진 사운드에 매력을 느끼는 새로운 팬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십센치의 겉모습만 댄디해졌지 속마음은 여전히 엉큼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욱 치밀하게 엉큼해졌다. 그리고 팬들이 십센치에 핑크플로이드 같은 실험적인 음악을 기대했던 게 아니지 않나? 들으면 즐거우면 그만인 것을. 이것도 십센치고 저것도 십센치다.
123@heraldcorp.com
십센치(10㎝)는 두 번째 앨범 ‘2.0’ 역시 데뷔앨범과 마찬가지로 인디레이블(미러볼뮤직)을 통해 발매했다. 그러나 아는 사람만 아는 밴드에서 국내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에 그 좋다는 CF까지 꿰찬 이들에게 인디 딱지를 붙이는 일은 적잖이 민망한 일이다. 앨범 수록곡 전반의 때깔 고운 사운드와 시선을 잡아끄는 야릇한 재킷 사이에선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슈가팝에서 웰메이드팝으로의 변화가 얼핏 부담스럽다. 이 같은 변화의 간극을 폼 잡지 않는 가사가 메우고 있지만, 십센치 특유의 찌질하지만 솔직하고 경쾌한 감성이 풍성한 편곡에 가려 무뎌져 들려온다.
그러나 데뷔 앨범의 그림자를 걷어내면 십센치의 두 번째 앨범은 분명히 잘 만든 음악을 담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이제 자신들의 나이를 계란 한 판으로 헤아릴 수 없게 된 십센치가 나이의 무게만큼 음악 자체에 진지한 욕심을 냈음이 앨범 곳곳에서 묻어난다.
첫 트랙 ‘그대와 나’의 소박함은 멜로디컬하고 공간감 넘치는 최근의 인디씬 모던 포크와는 다른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일종의 선언처럼 들린다. 이 같은 선언은 두 번째 트랙 ‘파인 땡큐 앤드 유(Fine Thank You And You)’에서 극대화된다. 에이징(Ageing)된 마이크로 먼 곳에서 녹음된 듯한 비틀즈의 ‘렛 잇 비(Let It Be)’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인트로, 녹슨 픽업 위에서 울리는 듯한 기타줄의 떨림까지… 단순한 복고를 넘어 질감까지 재현한 이 곡에선 트렌디함 대신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오래된 것이 좋다)’에 꽂힌 십센치의 노정이 느껴진다. “너는 30평에 사는구나 난 매일 라면만 먹어”, “좋은 차를 샀더라 나도 운전을 배워” 식의 당혹스런 ‘돌직구’ 가사는 복고 사운드와 맞물려 자잘하게 흩어진 오래된 기억들을 쓸어 모으는 마력을 보여준다. 마치 오지 오스본의 ‘굿바이 투 로맨스(Goodbye to Romance)’처럼. 권정열의 끈적거리는 목소리에 실린 신파 ‘한강의 작별’에선 ‘뽕끼’보단 심수봉의 트로트 같은 일종의 격(格)이 앞선다. 9번째 트랙 ‘마음’의 “너의 마음을 은행에 맡겨 예금통장에 부을 수 있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의 마음이 불어나고”와 같은 가사에선 과거 70~80년대 포크음악의 문학적인 결이 느껴진다. 가장 십센치 답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10번째 트랙 ‘이제. 여기서. 그만’은 어쩌면 앞으로 다시 듣기 힘들 십센치의 록넘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귀하게 들린다.
1집 앨범과 비교해 가사의 수위가 낮아졌다는 것도 오해다.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른바 ‘섹드립’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1집 앨범처럼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 속엔 성인이라면 알만한 온갖 성적인 은유들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더욱 야하다. 보사노바 풍의 ‘냄새나는 여자’가 주는 공감각과 댄서블한 비트의 일렉트로닉 ‘오늘밤에’의 노골적인 가사와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내레이션도 야하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 가장 야한 곡은 ‘너의 꽃’이다. 앨범 수록곡 중 가장 예쁜 사운드를 들려주는 곡이어서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제목부터 가사까지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면 ‘19금 딱지’는 ‘오늘밤에’가 아니라 ‘너의 꽃’에 붙여져야 마땅하다. 이 또한 십센치의 의도였다면 그 주도면밀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젬베 빠진 사운드에 ‘길거리 정서’도 빠진 것 같아 아쉬움을 느끼는 팬들도 많겠지만, 대중적으로 다듬어진 사운드에 매력을 느끼는 새로운 팬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십센치의 겉모습만 댄디해졌지 속마음은 여전히 엉큼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더욱 치밀하게 엉큼해졌다. 그리고 팬들이 십센치에 핑크플로이드 같은 실험적인 음악을 기대했던 게 아니지 않나? 들으면 즐거우면 그만인 것을. 이것도 십센치고 저것도 십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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