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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휴먼다큐> 찔레꽃 · 봄비 · 아버지 · 귀천…한곡한곡이 ‘한편의 모노드라마’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1. 10.

사이드 기사는 정말 내가 쓰고 싶은대로 썼다.

나만의 장사익 베스트 열 곡!

 

 

<쉼 휴먼다큐> 찔레꽃 · 봄비 · 아버지 · 귀천…한곡한곡이 ‘한편의 모노드라마’

1995년 1집 ‘하늘 가는 길’부터 2012년 7집 ‘역(驛)’까지 장사익이 17년간 정규 앨범을 통해 발표한 곡은 65곡에 달한다(4집 ‘꿈꾸는 세상’에 다시 녹음돼 수록된 1집의 ‘찔레꽃’과 2집의 ‘아리랑’ 등 포함). 가수 입장에선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겠지만, 팬의 입장에선 조금 더 자주 듣게 되는 곡이 없을 수 없다. 발표된 앨범과 곡이 적지 않은 만큼, 처음 장사익을 접하는 사람들로선 어떤 앨범부터 먼저 들어봐야 할지 그 선택의 과정부터 난감하다.

1996년 가을, 멋진 재킷의 앨범들이 수두룩한 레코드숍에서 조금은 기괴해 보이는 재킷의 앨범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춘기 소년이 있었다. 재킷엔 한복을 입고 로커마냥 마이크를 삐딱하게 뉜 채 절규하는 나이든 사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간식비를 아껴 매주 앨범 한 장씩을 사 모았던 소년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구입하려던 외국 헤비메탈 앨범 대신 그 앨범을 집어 들었다. 그 앨범은 장사익의 ‘하늘 가는 길’이었다. 첫 트랙 ‘찔레꽃’ 후렴구의 절창에 놀라 눈물을 찔끔거린 소년은 마지막 트랙 ‘봄비’에서 넋을 놓고 말았다. 그날 이후 소년은 16년째 장사익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그 소년은 16년 후 장사익 앞에서 감히 기타를 들고 자작곡을 부르는 재롱도 떨었다. 이 정도 구력의 팬이면 장사익 입문자에게 얕은 훈수를 두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듯싶다.


 


입문자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앨범은 역시 데뷔 앨범 ‘하늘 가는 길’이다. 앨범에 실린 10곡은 저마다 모노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은근한 향기를 슬픔으로 형상화시킨 ‘찔레꽃’, 강아지들처럼 기어 나와 아버지의 늦은 귀가를 맞이하는 아이들의 졸린 눈망울을 눈앞에 그려내는 ‘귀가’, 등 굽은 노인의 술 한 잔에 기대어 젓가락 박자로 부르는 희망가 ‘국밥집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절절하게 표현한 ‘섬’,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감정을 극대화해 죽음을 신나는 여행으로 승화시킨 만가(輓歌) ‘하늘 가는 길’, 깊은 설움의 흐느낌 ‘봄비’까지 단 한 곡도 빼놓을 수 없는 명반이다. 특히 데뷔 앨범은 스캣과 샤우팅, 귀곡성을 오가는 장사익의 다채로운 목소리만큼이나 실험적인 음악이 돋보인다. 장사익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전위적인 연주는 장사익의 목소리와 팽팽하게 맞서며 앨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같은 긴장감을 주는 앨범은 장사익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데뷔 앨범이 유일하다.

디지털 싱글이 음악시장의 대세로 떠오른 현재, 앨범을 통째로 듣기 부담스럽다면 음원을 내려받아 들어보는 것도 좋다. 장사익은 다른 인기 가수들처럼 히트곡을 모은 베스트 앨범을 발표한 일이 없다. 장사익 스스로 베스트를 꼽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팬의 입장에서 베스트 10곡을 추천한다. ‘찔레꽃’ ‘국밥집에서’ ‘하늘 가는 길’ ‘봄비’(이하 1집 ‘하늘 가는 길’ 수록곡), ‘비 내리는 고모령’ ‘아리랑’(이하 2집 ‘기침’ 수록곡’), ‘동백아가씨’ ‘댄서의 순정’(이하 3집 ‘허허바다’ 수록곡), ‘아버지’(4집 ‘꿈꾸는 세상’ 수록곡), ‘귀천’(6집 ‘꽃구경’ 수록곡).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