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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기사 및 현장/음악 및 뮤지션 기사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부디 기억해 다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3. 11. 25.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앨범이 나왔는데 너무 반응이 없어 안타깝다.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부디 기억해 다오”

 

인디신 활동 여성 뮤지션들 아픈 역사 음악으로 관조
이효리·호란 참여 두번째 앨범 
은유·직유 오가는 섬세한 가사...잊혀져 가는 할머니들 아픔 전해

“하늘 바람과 별 그리웠던 엄마의 품속. 너른 나무 지나 보고 싶던 동무의 얼굴. 아아 이제 다시 볼 수 있나. 날 잊지 말아요. 날 잊지 말아요.”(이효리 ‘날 잊지 말아요’)

56명. 현재 생존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숫자다. 이 숫자는 1년 전 60명, 2년 전 69명이었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피해자의 수는 237명인데 이 중 181명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듣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남은 피해자의 평균 연령은 88세로 모두 초고령자다. 시간이 이들의 편에 서 있지 않다 보니 일본은 ‘살아있는 증거’들이 사라질 날만 기다리듯 침묵과 간헐적인 망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지난해 인디신에서 활동 중인 여성 뮤지션들이 모여 발표한 기획 앨범 ‘이야기 해 주세요’는 ‘살아있는 증거’들을 조명하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여성 인디 뮤지션하면 떠오르는 뻔한 어쿠스틱 사운드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아픈 역사를 관조해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이들이 다시 모여 ‘이야기 해 주세요-두 번째 노래들’을 발매했다. 인디 뮤지션들 외에 이효리, 클래지콰이의 호란 등 가요계 ‘워너비 스타’들도 힘을 보탰다.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을 주도한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송은지를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송은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여성 뮤지션의 시각에서 이야기하되 여성이라는 성정체성을 음악에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며 “이 앨범은 여성 인디 뮤지션들이 이뤄낸 음악적 성과와 현주소를 밝히는 작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앨범엔 호란이 부른 타이틀곡 ‘첫마디’와 투스토리의 ‘도사리 카페’를 비롯해 15곡이 실려 있다. 바드의 박혜리, 루싸이트 토끼, 빅베이비드라이버, 루네, 적적해서 그런지 등 참여 뮤지션의 면면도 모두 새롭다. 지난 앨범에 참여하려 했으나 아쉽게 불발됐던 이효리와 걸그룹 티티마 출신의 소이는 ‘날 잊지 말아요’와 ‘인 원더랜드(In Wonderland)’라는 곡으로, 지난 앨범의 재킷 디자인을 맡았던 이아립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로 재능기부를 해 앨범에 풍성함을 더했다. 송은지도 연진의 ‘과거’에 보컬로 참여했다.

송은지는 “참여 뮤지션들 모두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 고마웠다”며 “비록 기획 앨범에 참여한 곡이지만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앨범에도 그 곡들을 다시 실으며 애착을 가지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 앨범과 마찬가지로 포크, 블루스, 일렉트로닉, 록 등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이 담겨있지만 어쿠스틱 사운드가 전작에 비해 부각됐다. 그만큼 듣기 편안한 음악이 완성됐지만 은유와 직유를 오가는 섬세한 가사들은 서로 다른 뮤지션들의 곡들임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으로 엮여 무게감을 형성한다. 특히 일본 정부와 10년 동안 법정에서 공방을 벌인 위안부 피해자의 기록을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주인공 송신도 할머니의 사연을 서사로 이끌어 낸 로터스프로젝트의 ‘나와 우리의 이야기’는 앨범의 압권인 장면이다.

“돈 많이 번대서 따라 나섰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몇날 며칠 배타고 가며 엄마 생각나 울던 그때, 내 나이 열네 살. 매일 들이닥치던 군인들 영문도 모른 채 짓밟혔지. 만신창이 몸으로 한 달 밤낮을 배를 타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 돌아오니 사람들이 날 더럽다 하더라.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시집도 가고 애기도 낳고 다른 여자들처럼 그렇게.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부디 기억해 다오.”

앨범 발매 이후에도 송은지는 여전히 고통 받는 누군가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그는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동그라미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해피투게더’에 출연 중이다. ‘해피투게더’는 지난 1987년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35명이 탈출하면서 세상에 드러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재구성한 연극이다.

송은지는 “다음 ‘이야기 해 주세요’엔 일본과 동남아 등 다양한 국적의 뮤지션들을 참여시키고 싶다”며 “ ‘한국의 히로시마’인 경남 합천의 원폭 피해자들 조명하는 앨범을 기획 중이니 국내ㆍ외 많은 뮤지션들의 호응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