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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중고차 고르기와 함께할 인연 찾기에 대한 개똥철학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4. 1. 12.

나는 요즘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다. 그동안 몰았던 내 오래된 레토나가 올해를 넘기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내 레토나는 자동차종합검사에서 간신히 매연 기준을 통과했다. 그것도 차를 조금 손 보고 몇 번 기준을 넘기는 수모를 겪은 끝에 겨우 기준을 턱걸이했다. 내 2000년식 레토나는 매연저감장치를 달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는 강화된 기준을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수도권에서 시행 중인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제도를 통한 보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고차로 파는 것보다 수중에 쥐는 돈은 적겠지만, 사후처리는 훨씬 깔끔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말 예기치 못한 IMF 사태로 집안이 박살나는 꼴을 본 나는 대출 따윈 쳐다보지도 않는다. 폼은 나지 않아도 부채 없이 안정적인 재정을 꾸리며 살아가겠다는 것이 내 인생 경제 목표니 말이다. 알아본 일은 없지만 아마도 내 신용등급은 꽤 높은 편일 거다. 물려 받을 돈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 문제지. 당연히 매달 대출을 갚아나가야 하는 신차구입은 내 관심 밖의 일이다.

 

예산은 1000만원 미만으로 잡았다. 처음에는 뉴 스포티지를 구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여차저차 지인들로부터 여자들을 많이 소개받아 만났는데 SUV를 좋아하는 여자가 매우 드물었다. 꼭 여자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서울은 내 고향과는 달리 SUV로 오가는 일은 꽤 불편했다. 당장 주차부터 말이다. 그래서 승용차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난 여름 제주도에서 쏘울을 렌트해 몰아보니 승차감이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내 차가 무겁고 둔탁한 차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몇몇이 내 차를 보고 신기하다며 조금 몰아보다가 도저히 못 몰겠다며 내게 핸들을 도로 넘겼는데,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첫 후보엔 제주도에서 좋은 인상을 줬던 쏘울을 올렸다. 연비도 좋고 디자인도 괜찮았다. 그러나 조금 더 괜찮은 녀석을 구입하려면 예산이 초과될 것 같았다. 예산에 맞추려면 연식과 주행거리를 양보해야 했다.

 

조금 더 차를 알아보니 프라이드도 눈에 띄었다. 연비가 쏘울보다 좋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예산을 남길 수 있는 물건이었다. 매우 실용적인 물건이지만 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첫차로 경차를 몰았는데 실용성 여부를 떠나 도로에서 함부로 다른 차가 앞으로 끼어드는 등 수모를 겪은 일이 많았다. SUV를 구입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경차보다 큰 차체를 가진 모델임은 분명하지만 내눈에는 경차만큼 작아보여 탐탁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뉴비틀이 눈에 띄었다. 놀랍게도 뉴비틀 중고는 내 예산으로도 충분히 구입이 가능했다. 또한 차체의 디자인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알아보니 뉴비틀은 중고로 구입하는 순간부터 근심이 시작되는 물건이었다. 연비도 그리 좋지 않았고 승차감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못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고장이 나면 정비할 때 드는 비용이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눈은 뉴비틀로 자꾸 향했다.

 

뉴비틀의 디자인에 혹해 이리저리 검색을 하던 나는 문득 중고차 구입이 인연을 만나는 일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를 먹으며 점점 확실하게 느끼는 사실은 세상에는 결코 낭만이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 능력과 처지의 바깥에 존재하는 상대방과 만나 영화 같은 사랑을 나누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외모와 성격, 능력을 고루 갖춘 완벽한 상대방이 내 앞에 소개팅으로 나타나는 일은 극히 드물며. 설사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나와 인연이 맺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런 표현이 적합하진 않아 보이지만, 사랑을 처음 해 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는 모두 중고차와 비슷한 신세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중고차여도 마음에 쏙 드는 비싼 물건은 대출 없이 예산 이상의 물건을 구입할 수 없으며, 대출조건 역시 까다롭다. 또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구입을 하면 자칫 카푸어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디자인만 쫓다보면 연비와 승차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연비를 우선으로 고르다보면 디자인을 포기해야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런 상황을 소개팅과 선 등 이성과의 만남에 대입하자 기가 막히게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여기서부터 선택지는 한정된다. 외모가 괜찮은데 성격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외모와 성격은 좋은데 능력이 부족한 사람, 외모와 능력은 좋은데 성격은 더러운 사람, 능력은 좋은데 외모와 성격이 별로인 사람, 능력과 성격은 좋은데 외모가 빠지는 사람 등이 경우의 수로 꼽힐 것이다. 또한 의외의 양보할 수 없는 변수(종교 등)가 개입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 미천한 경험에 비춰보면 관계를 오래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성격이었다. 그리고 성격이 좋으면 처음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외모도 점점 예쁘게 보이더라. 

 

그렇게 생각을 하니 눈이 조금 맑아졌고, 자연스럽게 뉴비틀은 후보에서 사라졌다. 또한 프라이드 역시 실용성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과거 경차 시절 도로에서 겪은 수모들이 떠올라 후보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그렇게 내 중고차 최종후보는 쏘울로 잠정 정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기는 사실은 쏘울을 알아보는 동안에도 뉴비틀이 머릿속에서 종종 떠오른다는 것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이 떠올랐다. 나는 ‘그 다홍치마가 쉽게 물이 빠지고, 수선비도 많이 드는 귀찮은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속담을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개똥철학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나는 중고차와 비교해보면 어떤 차종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쪼까 실용적이고 연비도 그럭저럭 쓸만한데 승차감은 별로고 모양도 투박한 SUV와 가장 닮은 것 같았다. 딱 내 레토나네? 이런 젠장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