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부터 '취재X파일'로 써보려고 했던 주제인데 너무 늦어졌다.
생각난 김에 썼다. 이번에 안 쓰면 또 몇 달을 허비할 것 같아서 말이다.
[취재X파일] 핀란드 어린이들은 잠들기 전에 헤비메탈 공룡과 만난다
기사입력 2014-05-25 16:30
알게 모르게 우리는 핀란드 헤비메탈 밴드의 음악에 익숙한 편입니다. 소나타 악티카(Sonata Arctica)나 나이트위시(Nightwish)의 음악은 TV 예능 프로그램 방송 중 ‘간지’ 나는 장면에 심심치 않게 배경음악으로 들립니다.
심지어 팝 이상으로 인기를 끈 핀란드의 노래도 있습니다. 역대 최고 시청률 드라마인 KBS 2TV ‘첫사랑’에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서정적인 발라드 ‘포에버(Forever)’는 핀란드의 ‘국민 메탈 밴드’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의 1996년 정규 5집 ‘에피소드(Episode)’의 수록곡이었죠.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무려 10만장 가량의 앨범이 한국에서 팔렸습니다. 한국은 이 앨범이 가장 많이 팔린 국가입니다. 물론 앨범 시작부터 지지고 볶는 사운드가 튀어나와 반품도 많았지만 말입니다.
이렇게 록 스피릿이 충만한 나라이다 보니 한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한 헤비메탈 밴드도 존재합니다. 5인조 헤비메탈 밴드 헤비사우르스(Hevisaurus)는 공룡으로 분장하고 무대에 등장해 만화 주제가 풍의 곡을 들려줍니다. (참조 : http://youtu.be/vWSc0uwrxYg) ‘마지막 매머드(Viimeinen Mammutti)’같은 곡은 제목부터 동심을 자극합니다. 이들의 앨범은 어린이들의 귀를 보호하기 위해 85데시벨을 넘지 않도록 음량을 조절해 담겨 있으며, 라이브에서도 그 음량을 유지해 들려준다는 군요.
어린이들에게 워낙 인기가 좋아 헤비사우르스는 2009년 첫 앨범 ‘Jurahevin kuninkaat’로 핀란드 앨범 차트 5위, 2010년 ‘Hirmuliskojen yö’로 3위, 2011년 앨범 ‘Räyh!’로 2위에 오른데 이어 2012년 앨범 ‘Kadonneen louhikäärmeen arvoitus’로 마침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뽀로로’가 ‘패티’ ‘루피’ ‘크롱’ ‘포비’와 함께 무대에 올라 헤비메탈을 불렀는데 ‘뮤직뱅크’ 1위를 차지한 격이랄까요? 그런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핀란드에선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헤비메탈은 곱게 취급받지 못 하는 음악입니다. 시끄럽고 불량해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죠. 이 시끄럽고 불량해 보이는 음악을 좋아하는 핀란드는 매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상위권에 오릅니다. 유엔의 ‘2013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는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 7위에 올라 있습니다. 한국의 순위는 핀란드보다 한참 처진 41위에 불과합니다.
헤비메탈은 열정이 없고 성실하지 않으면 연주 자체가 불가능한 음악입니다. 정교한 연주와 합이 필요한 음악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팀워크가 없인 헤비메탈도 없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가 중요한 음악이죠. 핀란드를 예로 들어 헤비메탈을 좋아해야 행복해진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펼치고자 함은 아닙니다. 기자는 핀란드 근처에 가본 일도 없고 앞으로도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다만 헤비사우르스 같은 밴드의 음악도 정상에 오르고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정상에 오르는 핀란드가 한국보다 겉보기에 훨씬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한 생태계의 선결 조건은 종의 다양화입니다.
올해 세계 최대의 음악 페스티벌인 영국 ‘글래스톤베리’에 사상 최초로 초청받은 한국 아티스트는 메이저 무대에서 활약 중인 아이돌들이 아니라 인디 뮤지션들이었습니다. 다음 달 디스코 밴드 술탄오브더디스코, 크로스오버 밴드 잠비나이,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록페스티벌계의 ‘프리미어 리그’ 무대에 오릅니다. 대형 기획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도 불가능한 이 쾌거를 이들은 개성 있고 창의력 가득한 음악만으로도 이뤄냈죠.
한국에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좋은 대학을 나와 이름 있는 대기업이나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는 것인가요? 그 획일화된 성공의 기준에서 벗어난 다수는 실패한 인생인가요? 대중문화는 대중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한국의 음악 차트를 들여다보면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는 한국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돼 있어 씁쓸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연습생 시절을 거쳐 비슷한 노래를 불러 차트를 휩쓰는 아이돌들의 모습은 입시 지옥에서 극한의 경쟁 끝에 명문대 입학에 성공한 수험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은 독특한 노래들이 차트 정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즐거운 모습은 그만큼 한국 사회도 획일화에서 벗어나 조금은 건강해졌다는 신호일 테니까요.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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