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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 옥화9경) 시냇물이 묻는다. 여름아 어디쯤이니?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0. 11. 13.

시냇물이 묻는다. 여름아 어디쯤이니? 금관숲이 말한다. 여긴 벌써 가을이야!
[금토일]충북 청원 옥화9경 물길을 걷다
데스크승인 2010.08.13  지면보기 |  12면 정진영 기자 | crazyturtle@cctoday.co.kr  
   
 
   
 
1. 비오는 날의 수채화

망촛대가 버려진 들판을 덮었다. 군락을 이루어 구름처럼 하얀 꽃잎 너머로 야트막한 산세가 엎드린 채 푸르렀다. 발걸음이 망촛대를 뒤로 밀어내며 냇물을 가까이 당기자 가슴까지 솟아오른 갈잎이 무리지어 달려들었다. 바람과 만나 서걱거리는 푸른 갈잎은 팔뚝 여기저기에 붉은 선을 그리며 쉬이 길을 내주지 않았다. 갈대숲 속에서 냇물은 흐르는 소리와 냄새로 선명했다.

길 없는 길을 억지로 벗어나자 환삼덩굴이 바짓가랑이를 붙잡는다. 에둘러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촘촘히 물가에 얽힌 덩굴들은 끊임없이 징검다리로 향하는 발걸음을 교란했다. 쑤욱! 오른발이 징검다리를 몇 걸음 앞에 두고 함정에 빠졌다. 환삼덩굴 아래에 은폐된 물웅덩이까지 파악할 능력은 내게 없었다. 발목까지 잠긴 물이 등산화 속으로 엄습해 질척댔다. 긴 망설임은 반드시 후회를 남기는 법, 왼발도 자진해서 오른발의 전철을 따랐다. 잠시 후 냇물과 하나 된 두 발은 잔잔한 유속 안에서 편안해졌다.

가랑비가 시야를 적신다. 징검다리 가운데쯤 멈춰 서서 시선을 휘둘렀다. 굽이마다 크고 작은 공간을 품은 산세는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들의 긴 여운과 더불어 느긋했다. 냇물의 흐름은 게으름도 서두름도 없었다. 신록을 머금어 짙푸른 얕은 냇물은 징검다리를 만나 엎어져 하얗게 부서지다 일어서서 모이기를 반복했다. 홀연히 나타난 백로 한 마리가 수면에 닿을 듯 낮게 날며 멀어져갔다. 흐린 하늘 아래서 발화점에 다다른 배롱나무 가지가 낙관마냥 붉었다.

돌아보는 풍경마다 찰나의 산수화로 눈가에 머무는 곳. 금관숲 가는 길의 기착지, 옥화1경 '청석굴' 주변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2. 전설

옥화1경 청석굴은 인근의 유일한 천연동굴이다. 찍개와 볼록날, 긁개 등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이곳은 대한민국에 완전한 형태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거유적이기도 하다. 개굴(開窟)이래 수만 년 동안 단 한 번의 리모델링도 거치지 않은 청석굴은 원초적인 서늘함으로 사진부 우희철 부장과 나를 맞았다.

동굴 내부의 길이는 약 30m로 짧은 편이어서 용이 튀어나왔다는 전설을 무색하게 만든다. 본래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굴이었으나 지반 침하로 인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이후 용은 지반침하로 막힌 굴 안 저편 너머에 갇혀 전설로 구전되고 있다. 더 이상 주거공간으로서 기능하지 않는 굴은 오랜 세월에 걸쳐 천천히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동굴 바깥 깎아지른 절벽에는 암장이 마련돼 있다. 청석굴 암장은 1992년 개척 이래 클라이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당시 암장을 개척했던 선구자들은 볼트구멍 하나하나를 망치로 손수 뚫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인터넷 서핑 도중 발견한 당시 암장 개척 현장 동영상역시 로프에 몸을 맡긴 채 바위에 망치질 하고 있는 클라이머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한 줄의 로프에 의지해 오를 수 없는 절벽을 기어이 오르고자 땀 흘리며 망치질 하는 클라이머의 모습은 이무기의 허물을 벗고 승천하고자하는 용처럼 경건하게 느껴졌다. 불가능한 현실을 이룰 수 있는 꿈으로 현실화시키되 자연을 부정하지 않는 암장을 바라보며 내쉬었던 거친 호흡은 긴 여운으로 되돌아왔다.

3. 달맞이꽃

사진부 우희철 부장과 나는 청석굴에서 나와 달천을 따라 걸었다. 한 번 젖은 발은 뭍보다 물속을 더 편안해했다. 발걸음은 물속에서 아직 이끼를 벗지 못한 돌들과 만나 미끄러지다 버티기를 반복했다. 이정도면 걷는 데 무리 없다 싶더니 곧 뻘바닥이 나타나 발걸음을 가로막는다. 길은 본래 주인 없어 길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하나 무릎 가까이 빠져드는 뻘에 맞서 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우리는 뻘에서 빠져나와 뚝방을 따라 걸어야 했다.

나리꽃, 접시꽃, 끈끈이대나물 등 여름꽃 사이로 꽃잎을 앙다문 달맞이꽃이 눈에 띄었다. 개중에 흐린 날씨에 착오를 일으켜 반 쯤 꽃잎을 연 녀석들이 몇몇 보였다. 꽃송이에 코를 대자 은은한 향기가 감돌다 이내 사라져 버린다. 늘 그래왔듯 달맞이꽃은 수줍음이 많다.

초저녁 무렵 꽃잎을 활짝 연 달맞이꽃은 청초하다. 과하지 않은 향기에는 기품이 서려있다. 그러나 현재 달맞이꽃은 생태계 교란 식물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다. 이는 달맞이꽃이 뿌리내린 곳에 다른 식물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이유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달맞이꽃 군락지는 메마르고 척박해 다른 식물들에게 부적합한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달맞이꽃은 다른 식물들 사이 끼어들지 못하고 척박한 곳에 동떨어져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꿀벌과 인연을 맺는 것은 아니다. 꿀벌은 주로 낮에 활동하나 꽃은 밤에 피는 녀석도 있기 때문이다. 꿀벌은 수분(受粉)을 담당하는 수많은 곤충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밤에 주로 활동하는 나방, 파리, 모기 등 해충으로 천대받는 녀석들이다.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녀석들이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신록을 민둥산과 맞바꿔야할지도 모른다.

어둠속 달맞이꽃과 날벌레들의 숨죽인 만남은 마치 "쓰레기들에게도 순정은 있다"는 무언의 외침 같아 처연하다. 나는 달맞이꽃에게서 남모를 사연을 간직한 아름다운 여인의 한을, 날벌레들에게서 천대받는 추남의 우직한 순정을 읽는다. 달맞이꽃의 꽃말이 '기다림', '말없는 사랑'이었던가. 언젠가 끼적였던 이 시조는 초저녁 무렵 하염없이 개화를 기다리며 달맞이꽃에게 보냈던 연가다.

- 달맞이꽃 -
길고긴 여름한날 움츠려 지새우다
허기진 달빛아래 고운 모습 펼치오니
그마저 누가 볼 새라 수줍어 우는구나

   
▲ 사람의 주거는 위대하다. 옥화1경 청석굴(왼쪽)은 구석기시대 사람이 살았고, 능소화가 활짝 핀 흙담집은 현대인이 살고 있다. 두 곳 모두 길손에겐 아파트보다 정겹다.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4. 사라져가는 것들

뚝방 오른쪽으로 들깨를 심으며 잡초를 걷어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금관숲까지 남은 거리를 묻자 20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걸어서 금관숲으로 간다는 말에 할머니는 질린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돌아서면 자라나는 잡초들을 뽑아내는 할머니의 손길너머로 푸른 들판이 가랑비 머금어 풍요로웠다. 땅의 정직함을 믿는 오래된 움직임은 순결성에 가닿아 새로움을 지향하기에 늘 아름답다.

시골의 골목은 아직 옛 정취가 덜 뭉개져 있어 정겹다. 19번 국도를 경유하지 않고 옥화2경 용소로 향하는 루트는 시대를 종잡을 수 없는 좁은 골목의 연속이다. 담벼락들은 영글어가는 옥수수들로 푸르렀다. 흰색, 보라색 도라지꽃들로 빼곡한 텃밭은 사랑채와 멀지않은 곳에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마을의 밥상이 소박하고 포근하리란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우 부장이 버려진 흙벽을 가리켰다. 사람의 온기를 잃고 허물어져 가는 흙벽 틈새로 옥수숫대가 보였다. 우 부장은 통나무나 대나무로는 흙벽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통나무, 대나무와 달리 옥수숫대는 탄성을 지니고 있어 흙과 더불어 한 몸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도 쉽게 갈라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수명을 다해 구멍을 휑하니 드러낸 흙벽은 강한 게 강한 게 아니고 약한 게 약한 게 아니라고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2층 높이로 우뚝한 흙벽들이 골목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창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오래된 흙벽이었다.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여러 구멍이 줄지어 있었다. 낯선 구조물에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내게 우 부장은 "이 높다란 흙벽은 담배막"이라며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였다.

담배막 혹은 담배건조실로 불리는 흙벽 구조물은 밭에서 거둔 담뱃잎을 새끼줄로 엮어 줄줄이 매달아 불을 지펴 말리던 곳으로 고추 등을 말릴 때도 유용하게 쓰였다고 한다. 건조하는 불길을 조절하는데 실패하면 담뱃잎의 색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졸지 않고 밤새 지켜보는 일은 무척 중요했다. 지붕아래 조그만 유리창은 열기를 견디며 담뱃잎의 건조과정을 지켜보기 위한 고육지책의 흔적이다.

이제는 담배농사에 매달릴 인력도 없고 수지타산도 맞지 않는 농촌에서 담배막은 애물단지로 남아 겨우 창고 등으로 쓰이고 있다. 처음에는 개발의 편자마냥 어울리지 않았을 흙벽과 슬레이트 지붕은 세월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하나 돼 역사 속으로 저물고 있었다.

골목을 벗어나자 노거수 한 그루가 장승마냥 서있다. 살아서 200번쯤 여름을 봤음직한 나무는 올해도 기어이 잎사귀를 뽑아내 바닥에 그늘을 드리웠다. 살아있는 부분은 계속 살아가고 죽어가는 부분은 계속 죽어가는 것이어서 나무는 점점 살아있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을 잃고 각화된 자리에 형성된 수공(樹空)이 화석마냥 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수공은 다른 생명을 품기에 적당한 자리다. 수공은 건조하고 쉽게 바스라지기 때문에 새들의 보금자리로 안성맞춤이다. 그러다보니 노거수의 수공에는 늘 솔부엉이나 소쩍새 따위가 스며든다. 우 부장이 수공을 툭툭 건드리자 놀란 소쩍새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손바닥만 한 소쩍새는 가지위에 올라 한참동안 노여운 눈초리를 흘리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무 잔가지 사이로 숨어드는 뱁새 때 너머로 백로가 박차 올라 산으로 날았다. 우 부장은 다시 물길로 향하며 "물이 깊어 먹이를 잡을 수 없는 운하에는 새가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까마귀의 희미한 울음은 보이는 작은 것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의 품안에서 견디고 있음을 간과하는 사람들을 향한 경계처럼 들렸다. 은사시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려 바삭거렸다.

5. 친구

우리는 마을을 벗어나 국도변을 따라 옥화2경 용소(龍沼)를 찾았다. 이곳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용소는 승천하던 용이 여자를 보고 부정 타 물속으로 떨어져 이무기가 됐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었다. 용도 사람처럼 암컷에 정신 팔려 대사를 그르친 일이 있다니… 연민보다 웃음이 먼저 새어나온다.

목좋은 물가는 이미 피서객들의 차지다. 친구끼리 부부동반으로 놀러온 듯한 이들 일행은 삼겹살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술잔에 입술을 기대고 있었다. 지글거리는 기름 냄새에 "한 쌈만 얻어먹고 가겠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발걸음이 과하게 바빠지며 냄새로부터 멀어져 갔다.

제3경 천경대에 이르자 물속에서 서투른 낚시질을 하는 무리가 보였다. 여름을 맞아 친구끼리 놀러왔다는 이들은 현재 고3수험생이었다. 수험준비는 안하냐는 물음에 괜찮다며 씨익 웃는다. 좁은 PC방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정신없이 두드리는 또래들의 모습보다 이들의 여유 있는 미소가 훨씬 더 건강해 보였다. 사람은 결국 추억을 먹고 사는 약한 존재 아니던가. 올 늦가을 수능시험 전까지 이들은 땀방울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교실 한 구석에 모여 오늘을 추억할 것이다. 수능 결과와 관계없이 오늘 친구들과 쌓은 추억은 내일의 긍정의 에너지다. 우리는 진심으로 이들의 승전보를 바랐다.

조금 더 걸어 제4경 옥화대에서 만난 무리는 초로의 사내들이었다. 이들은 머리만 물 위로 내민 채 엎드려 다슬기 잡이에 여념 없었다. 물속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촉각만으로 다슬기를 잡기는 무리였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페인트칠을 업으로 한다는 이들은 비 때문에 작업을 접고 옥화대로 놀러왔다고 말했다. 그들의 주름살 섞인 유쾌한 웃음은 조금 전 만났던 고3수험생들의 건강한 미소와 닮아있었다.

강을 따라 금관숲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져있냐는 질문에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쉽게 그 말에 긍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길은 곧 끊기고 말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우리는 물속을 걷기로 결정했다. 생각과 달리 물은 점점 깊어져 갔다. 한번 잘못 든 길은 돌아가기에 어렵고 나아가기에 암담했다. 이후 금관숲이 나타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우리는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을 여러 번 건너고 거의 수직에 육박하는 험한 산길을 오르다 미끄러지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결국 제5경 금봉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고립에 벗어난 우리는 19번국도 갓길을 따라 금관숲으로 향했다. 아스팔트는 등산화 속 물에 불은 발바닥을 저리게 반탄 했다.

6. 다시 비가

   
▲ 숲은 볕을 막는다. 그래서 그늘엔 여름이 없다. 나무그늘이 빼곡하게 바닥을 드리우는 금관숲은 옥화9경 중 제6경인데 학생들의 야영지로 인기다.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청석굴에서 출발한지 5시간 30분 만에 제6경 금관숲에 도착했다. 예상시간보다 2시간가량 늦은 도착이었지만 수도 없이 가시에 찔리고 풀잎에 베였던 여정을 생각하며 도착만으로 안도했다. 한 여름에도 나무그늘이 빼곡하게 바닥을 드리우는 금관숲은 학생들의 야영지로 각광받는 피서지다. 그러나 비 때문인지 야영장은 텐트하나 없이 고요했다. 나는 숲 안에 마련된 세면대에서 등산화 속 찌든 뻘을 씻으며 발바닥에 잡힌 물집을 터트렸다. 긴장이 풀린 몸속으로 시장기가 몰려들었다. 식당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금관숲에서 멀지 않은 식당 바깥 평상에 자리 잡은 우리는 종아리와 발바닥을 주무르며 민물매운탕을 주문했다. 가랑비를 뿌리다 소강상태를 보였던 흐린 하늘이 씨알 굵은 빗방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천막과 이파리를 쉴 새 없이 때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습기 가득 머금은 바람이 땀에 절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사정없이 육신을 힘들게 내몬 후 느끼는 아득한 편안함… 저마다 다른 풍경을 품은 길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걷는 이유라고 여겨왔는데 실은 그 끝에서 느끼는 아득한 편안함이 이유였나 보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아 실체를 가늠할 수 없는 편안함이 그리워 나도 모르게 틈나면 먼 길에 몸을 내맡기곤 했었나 보다.

민물매운탕이 평상 위에 올랐다. 꺽지, 빠가사리, 무래무지가 맛을 모두 국물에 내준 채 냄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매운탕 국물이 가슴을 타고 구석구석 스며든다. 한나절 더운 게 들지 못했던 몸은 국물 한 숟갈에 빠르게 허물어졌다. 빗소리가 더욱 짙어진다. 여름이 깊어가는 소리다.

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사진=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