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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천문대 기행)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별들이 쏟아졌다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0. 11. 22.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별들이 쏟아졌다
[금토일]‘夜心만만’ 칠갑산 천문대 230만년 달려온 빛이 눈앞에… ‘별볼일 많은 동네’ 눈이 즐겁다
데스크승인 2010.11.19  지면보기 |  12면 정진영 기자 | crazyturtle@cctoday.co.kr  
   
"내 마지막 별 헤는 밤은 언제였던가?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본 추억이 내게는 있었던가?"

별 볼일 없는 하루를 별 볼일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여유다. 바쁘다 바쁘다 말들을 하지만 사실 물리적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복강박'에 빠져 있을 뿐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어떻게 그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 현재보다 편안한 심적 상태를 경험해본 지 오래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예고 없이 찾아오는 여유는 난감하다. 일에서 해방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 떠는 워커홀릭들처럼…

누구나 어린 시절이 가장 그립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소박한 특권 속에서 먼 곳을 향한 호기심과 방황은 늘 용서 받았으니 말이다. 별 볼일 많았던 예나, 별 볼일 없는 지금이나 별은 늘 과거 지향적인 낭만을 내재하고 있다. 시간에 묻어버린 그리운 것들이 현실 앞에 한 없이 작아지며 희미해지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고개 들어 가장 편안했던 시절의 마음으로 별들을 바라볼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맑고 시린 날 밤이면 천문대는 오래 전 추억을 그리워하는 나이 든 아이들과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들로 북적인다.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을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자그마한 망원경 렌즈 안에서 펼쳐지는 곰보 투성이 달과 행성, 은하 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비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새겨진다.
 - 흩어진 추억들을 모아 놓은 곳 -

지난해 7월 28일 개관한 칠갑산천문대는 칠갑산광장 휴게소에서 등산로를 따라 정상방향 해발 460m 중턱에 위치해 있다. 국내최대 구경(304㎜)의 굴절망원경과 3D 시청각실, 5D 입체 영상 시스템 돔형 천체투영실 등 최신 시설을 보유한 칠갑산천문대는 개관 이래 지금까지 5만여 명의 방문객들을 불러 모았다. 외진 곳에 입지해 있음을 상기하면 상당한 방문객 수다.

인공의 빛이 지상에 재림한 이후 별들은 도심의 밤하늘을 떠나 변두리로 향했다. 대부분의 천문대들이 그러하듯 칠갑산천문대 역시 민가와 먼 산꼭대기와 가까운 곳에 깃들어 있다. 지표면은 일교차로 인한 난기류의 영향으로 맑은 상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도심의 먼지와 광해(光害) 역시 천체 관측의 커다란 장애 요소다. 따라서 충남도내에서 가장 적은 인구를 가진 지방자치단체이자 칠갑산을 끼고 있는 청양군은 잃어버린 별들을 뒤지는 데 있어 최적의 장소 중 하나다.

천문대를 방문하기 전 날씨 확인은 헛걸음을 방지하기 위한 필수 사항이다. 낮 동안 맑았다고 밤까지 맑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다보니 1년 365일 중 제대로 별을 관측할 수 있는 날은 어림잡아 150여일 안팎에 불과하다. 또한 너무 밝은 달빛은 별들을 가린다. 복불복이다. 다행히 기자가 천문대를 찾은 날은 150여일 중 하루였다. 게다가 초승달이 떠있었다. 금상첨화다.

   
▲ 칠갑산 천문대가 보유하고 있는 304㎜ 구경 굴절망원경. 국내 최대 구경을 자랑하는 굴절망원경으로 반사망원경에 비해 맑은 상을 자랑하며 주간에는 태양 활동을, 야간에는 행성과 그 위성, 성단, 성운 등을 관측한다. 칠갑산 천문대 제공
천문대의 프로그램은 3D 입체영화 감상(시청각실)과, 5D 영상 관람(천체투영실)으로 시작된다. 특히 돔형 스크린에 직접 3D 입체 영상을 투사하는 천체투영실은 칠갑산천문대의 자랑거리다. 매시간 마다 25분가량 영화를 상영하는 천체투영실은 입체 영상뿐만 아니라 바람, 좌석의 진동 등 효과를 더해 더욱 실감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관람객들은 영상 관람을 마친 후 보조관측실로 향했다. 보조관측실에는 지름 400㎜ 반사망원경 외 6종의 다양한 천체망원경이 설치돼있다. 각종 망원경들은 그날 가장 잘 보이고 의미 있는 별들을 향해 친절하게 세팅돼 있어 관람객들은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슬라이드형 돔 지붕이 열리자 말 그대로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진다. 청정지역 청양의 밤하늘은 별들의 아늑한 피난처다. 달빛은 칠갑산의 능선을 희미하게 그리는데 이러한 풍경은 엄숙함을 내재하고 있어 담백한 서정성을 확보한다. 관람객들의 나지막한 탄성이 능선을 따라 돌아든다. 별들 앞에선 어른이나 애나 똑같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천체투영실에서 감상했던 가을철 대사각형 페가수스 별자리 주변으로 오래된 이야기들이 되살아온다. 불안에 떠는 안드로메다 공주와 메두사의 머리로 그녀를 구해내는 페르세우스… 허영심에 찬 말 한마디로 포세이돈의 진노를 사 딸 안드로메다를 위험에 빠트린 대가를 거꾸로 매달린 의자에 앉아 치르고 있는 카시오페아… 천문대 직원의 맛깔스러운 입담에 실린 오래전 별 이야기들은 밑바닥에 퇴적돼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던 추억을 끄집어내 시간을 되감는다.

담당 직원이 레이저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오늘의 주인공은 목성이다. 과학 잡지에 실린 생생한 목성의 모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망원경으로 들여다보이는 목성의 모습에 시큰둥하다. 반사 망원경 렌즈 안 목성이 목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은 희미한 띠뿐이니 말이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마어마한 목성의 폭풍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어 말로만 듣던 안드로메다 은하가 희미하게 망원경 안으로 든다. 지구에서 230만 광년이나 떨어진 지름 10만 광년의 이 거대한 은하는 육안으로 보이는 가장 먼 천체 중 하나다. 허블 망원경이 보았던 멋진 나선형 꼬리는 없다. 그러나 230만 년을 내달려 지구에 도달한 오래된 빛을 맞이하는 감동은 거대한 나선형 꼬리의 아름다움에 못지않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달이다. 망원경으로 당겨진 초승달은 자신의 치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크레이터가 생생하게 눈에 든다. 목성과 안드로메다의 심심한 모습에 시큰둥해 하던 사람들은 곰보 투성이 초승달에 열광했다. 하나 둘씩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망원경 렌즈에 들이댄다. 기자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초점이 흔들려 만족할 만한 사진을 얻진 못했지만 대기자들이 많아 물러나야 했다. 황소자리 부근에서 성운에 싸여 청백색으로 신비롭게 빛나던 좀생이별(플레이아데스 성단)은 달의 인기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주관측실의 굴절망원경은 국내 최대 구경(304㎜)을 자랑한다. 주간에는 홍염 필터를 통해 태양 활동을 관측하고 야간에는 각종 행성과 그 위성, 성운, 성단을 쫓는 굴절망원경은 반사망원경에 비해 고가이나 맑은 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 날 굴절망원경은 목성을 향해 뻗어있었다. 굴절망원경 속 목성은 보조관측실 반사망원경보다 선명하게 다가왔다. 목성의 주위로 조금 전에는 없었던 밝은 점 두 개가 눈에 띈다. 갈릴레이 4대 위성 중 둘을 목격한 것일까? 이오, 에우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지동설 이론의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던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오래전 갈릴레이가 느꼈을 경이로움을 더듬었다.

 

 

- 우리는 보잘 것 없으나 소중하다 -

(지면에 실리지 않은 기사 파트, 사실 천문대를 통해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 부분이었으나 지면 문제상 실리지 않았다. 안타깝다)

 

「지구 전체는 하나의 점에 불과하고, 우리가 사는 곳은 그 점의 한 구석에 지나지 않는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中

 

의무교육을 마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의문 부호를 달지 않는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과학의 영역이 아닌 상식이다. 20세기 인류 과학 최대 성취 중 하나인 NASA의 아폴로(Apollo) 달 착륙 프로젝트는 달에서 기어이 토끼를 추방시키고 말았다. 별들과 얽혀 있던 신화와 오래된 드라마 역시 토끼와 동행했다. 곧이어 파이오니어(Pioneer), 보이저(Voyager) 프로젝트의 일환에 따라 차례로 지구의 중력을 벗어난 무인우주선들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황도면을 내달리며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진정한 인류의 인식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망원경으로 관측되지 않았던 수많은 비경들이 총 천연색 사진으로 전송돼 과학 교과서에 담겼다. 지난 2005년 지구를 떠난 뒤 총알의 10배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뉴 호라이즌스(New Horizons) 우주선은 오는 2015년 명왕성 부근에 도달할 예정이다. 이제는 행성계에서 벗어나 카이퍼 벨트(Kuiper Belt)의 소행성 '134340'으로 불리는 명왕성도 진정한 인류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의 위대한 과학의 결과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축소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우주의 역사(150억년)를 1년으로 축소하면 지구의 탄생은 9월 중순 가을 무렵 어느 날에 벌어진 자그마한 사건이다. 최초의 생물은 그로부터 10여일 가량 지난 뒤 잉태됐다. 인류의 조상이라 할 만한 존재의 등장은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12월 1일 이른 초겨울 새벽 무렵이었다. 이후 한 달 내내 그들은 초원 위에서 추위에 떨며 방황했다. 1년을 고작 15분가량 남겨두고서야 화식(火食)을 하게 된 인류는 재야의 종 카운트다운 10초 전, 비로소 최초의 문명을 태동시킨다. 이어 5초전 부처, 4초전 예수, 3초전 마호메트가 차례로 등장해 인류의 정신세계를 뒤흔들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연 위대한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재야의 종이 울리기 직전에야 모나리자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과학은 인류의 위대한 혹은 위대하다고 여겼던 수많은 것들을 한순간에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존재로 끌어내리며 일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찍이 그러한 평범함을 인식했던 선구자들은 특별함의 세계에 머물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모든 진리는 3단계를 거친다. 처음엔 조롱받고 그 다음엔 반대 받다가 마지막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쇼펜하우어

 

그러나 지금은 특별함의 세계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지로 조롱받는 시대다. 지동설과 천동설의 지리멸렬했던 논쟁은 지난 1838년 독일의 천문학자 베셀이 연주시차를 입증해 백조자리 61번 별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재는데 성공함으로써 종료됐다. 대표적인 선구자 갈릴레이에게 이단 판결을 내렸던 교황청조차 지난 1992년 마지못해 자신들의 고발 조치를 취소했다. 바야흐로 과학의 전성시대다.

과학, 특히 천문학은 겸손의 학문으로 일컬어진다. 그렇다고 수많은 별들 앞에서 우리가 더 이상 만물의 기준일 수 없다는 현실에 의기소침해야 하는가? 우리가 우주 안에서 먼지 크기도 되지 않는 지구 위에서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서글퍼해야 하는가?

그러나 과학을 통해 깨닫게 된 보잘것없음은 한편으로 삶의 소중함을 방증한다. 지구와 쌍둥이처럼 비슷한 크기를 가진 금성에 진입한 구 소련의 탐사선 베네라(Venera)호는 무간지옥에 가까운 열기와 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미(美)의 여신 비너스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바이킹(Viking), 패스파인더(Pathfinder), 오퍼튜니티(Oppertunity), 스피릿(Spirit)이 전해온 화성의 모습은 모래폭풍과 추위로 황량했다. 저 멀리 발 디딜 땅 없는 목성 이후의 가스형 행성들 역시 그 어떤 생명의 징후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성탄절, 호이겐스(Huygens)호가 토성 최대의 위성 타이탄의 대기에 진입해 4시간가량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타이탄에는 메탄 성분의 비가 내리고 있었고 기온은 영하 178℃ 였다. 목성의 위성 에우로파의 두꺼운 얼음 층 아래에는 생물체를 품을 만한 거대한 바다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그 역시 추정일 뿐이다. 태양계를 제외한 행성계도 여럿 발견됐으나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먼 곳에 있어 생명 현상을 확신하기 어렵다.

 

「당신과의 만남은 신의 축복이다. 수십억, 수백 년의 우주시간 속에 바로 지금, 그리고 무한한 우주 속의 같은 은하계, 같은 태양계, 같은 행성, 같은 나라,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1조에 1조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확률보다도 작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中

 

지금까지 드러난 각종 관측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지구 위에서 벌어지는 생명 현상은 우주에서 유일하다는 단정을 지을 수는 없어도 최소한 꽤 희귀한 현상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우리는 그 선택받은 희귀함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확률의 인연으로 맺어진 우리들. 그러므로 우리의 만남은 더없이 소중하다.

 


칠갑산 천문대(청양)=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 휴관일 -
설·추석연휴,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그 다음날)

- 요금 -
초등학생 (개인:1000원, 단체:700원)
중·고등학생 (개인:2000원, 단체:1500원)
성인 (개인:3000, 단체:2500원)

- 가는 길 -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마치리 산 526-3
청양IC ⇒ 칠갑광장 ⇒ 칠갑산천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