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뭐래도 가장 여행다운 여행의 낭만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이동수단은 열차다. 마이카가 흔치 않았던 시절, 열차의 굉음어린 질주를 바라보며 신천지를 꿈꾸었던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원하는 곳 어디든 내비게이션 하나면 해결되는 낭만 없는 세상 속에서, 지금도 열차는 과거의 낭만을 싣고 오래된 철로를 왕복하고 있다.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열차는 과거지향적인 낭만을 싣고 달린다. 풋풋했던 시절의 일부를 객실 안에 남겨둔 많은 이들에게 있어 열차는 단순 대중교통수단 이상의 존재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열차에 쫓겨 허겁지겁 플랫폼으로 밀려들어온 바람이 기다림의 지난함을 흩어놓으면, 객실 안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새로운 서정으로 가득했다.

좁은 좌석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설익은 음담패설에 귀 기울였던 학창시절의 여름방학, 특별할 것 없는 행동과 말투에도 자지러졌던 첫사랑, 들끓는 혈기로 나섰던 목적지 없는 방랑, 입영열차 창밖에서 눈물로 손 흔들던 부모님, 서울행 열차 속에서 부풀었던 청운의 꿈….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레일 위에 흩뿌려진 추억들이 아련하게 눈부시다. 가가호호 갖춰진 자동차와 내비게이션은 열차 속에서 바라보는 먼 곳의 낭만을 퇴색시켰지만, 질주하는 세상 속에서 열차는 여전히 오래된 향수를 싣고 기억 저편 플랫폼으로 환영처럼 다가온다.

여행 속의 낭만은 흔하지 않아야 제 맛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서대전-광천 간 직통 열차노선만큼 이러한 명제에 부합하는 여행길도 없을 듯 싶다. 이 열차는 하루에 단 한번밖에 운행되지 않는 귀하신 노선이다. 물론 경부선을 상행해 천안을 거쳐 장항선으로 하행하는 구간을 운행하는 차량은 많다. 그러나 이 열차는 호남선을 타고 하행해 익산을 거쳐 장항선을 휘감아 돌아 경부선으로 이어지는 기묘한 노선을 달린다. 대전서 서해바다까지 직통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열차다.


△흔하지 않는 노선의 흔하지 않은 풍경

아침 7시 20분, 버스가 서대전역에 도착했다. 하차하자 짙푸른 공기가 마른 기침을 유발했다. 홑지로 달랑거리는 달력 앞에서 일출이 머뭇거리고 있었다. 서대전-광천 간 직통노선은 하루에 단 한 번, 오전 7시 40분에 역을 스친다. 놓치면 끝이다. 부지런해야 한다.

서대전역이 기점인 열차는 출발 10분 전부터 플랫폼에서 승객들을 맞았다. 경부선 등 주요 대도시를 연결하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오르내리는 승객들이 많지 않은 열차는 가장 나이든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을 객실로 증명했다. 한눈에도 객실 안 승객의 평균연령은 칠순에 육박했다. 단 한 번 운행되는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보다 채워진 자리를 헤아리는 게 훨씬 빨랐다. 열차의 출발소리는 밭은 기침마냥 거칠고 메마른 질감으로 귓가에 내려앉았다.

여행 전용 열차가 아닌 이상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자리는 열차카페로 불리는 식당칸이다. 좌석이 차창 전면을 향해 배치돼있어 고개를 돌려야하는 수고로움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창문의 크기 또한 일반 객실보다 커 시야에 제한이 없다. 영업시간을 한참 남겨둔 식당칸은 텅 비어 있었다. 본래 배정됐던 좌석을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오전 8시를 넘기자 너른 유리창으로 햇빛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늘이 파랗게 열리자 뼈대만 남은 풍경들이 메마른 빛을 튕겨내며 깨어났다. 초록이 물러가 가벼워진 나뭇가지에 매달린 검게 익은 감 몇 개가 바람에 흔들렸다. 풍경은 파노라마처럼 우에서 좌로 흐르며 소실점으로 사라졌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빈 야산의 결핍을 채우고 있었다. 추위로만 인식됐던 겨울이 기름졌던 지난 계절의 잔영을 지우며 풍경으로 선명했다.

산하를 종단하는 경부선 주변 풍경에 익숙한 눈에는 호남선 주변 풍경이 이채롭다. 완만한 굴곡을 근근이 이어가던 낮은 능선은 평야를 만나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곡창지대라는 명성답게 수확을 끝낸 호남의 빈 들녘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햇살은 그림자 하나 걸리지 않는 너른 들녘으로 쏟아지며 미열로 눈을 녹이고 있었다. 증발하는 눈과 더불어 풋기 빠진 마른 잎 냄새가 차창 밖에서 피어오르는 듯 했다. 평야위에서 먼 산이 그립듯 지난 가을 황금물결로 장관이었을 풍경 또한 빈 들녘에서 그리웠다. 목 아프지 않은 납작한 풍경들은 고랑을 따라 한참 동안 이어졌다.

흑석리역, 계룡역, 논산역, 강경역, 함열역 등을 지나친 열차는 익산역을 만나 장항선으로 몸을 틀었다. 승무원 하나가 영업을 준비하기 위해 식당칸으로 들었다. 이 노선을 오가는 열차가 정말 하루에 한 번 밖에 없느냐는 나의 물음에 승무원은 몇 대 더 다닌다며 미소 지었다. 하루에 한 번 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탑승했다는 나의 반문에 승무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열차 탑승 시간표를 뒤적였다. 승무원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이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 열차는 승무원조차도 잘 모르는 희귀한 열차였다.

대야역, 군산역에서 잠시 멈춰 섰던 열차는 하구둑에 올라 장항역을 향해 도계를 가로질렀다. 차창 밖으로 너른 갯벌과 바다가 펼쳐졌다. 갯고랑을 따라 흐르는 바닷물… 버려진 정치망과 쪽배… 정동진역 같은 멋스러움은 없어도 객실 안에서 바다를 눈에 담는 일이란 꽤 매력적이다. 바다가 잦아들자 파밭이 푸르다. 텅 비어 가볍게 흩날리는 겨울 속에서 파밭은 홀로 도발적으로 빛났다. 나는 줄기 속에서 부동액 마냥 흐르고 있을 알싸한 진액을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떠도는 진액의 매콤한 향이 시장기를 불러들였다. 영업 준비가 덜 된 식당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음료수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물만 들이켰다.

비어있던 열차는 서천역과 대천역에서 승객들로 부풀었다. 두 역을 지나치며 객실 승객의 평균연령은 급전직하했다. 그 연유를 승무원에게 묻자 천안 지역 대학으로 통학하는 학생들과 수도권 지역에서 놀러오는 젊은이들이 많아 그렇단다. 놀러오는 젊은이들도 많고 공부하러 떠나는 학생들도 많은 대천역은 장항선에서 가장 젊은 역이다. 먹고 마시고 취했던 오래전 기억들이 기억 저편 모래밭으로 하얀 파도거품마냥 밀려든다.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맛있듯 대천은 대천이어야만 한다. 보령해수욕장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다. 사람들의 생각도 매한가지인 듯 역명과 해수욕장의 이름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지명은 사라졌지만 대천은 여전히 낭만으로 살아있다.

△시간과 토굴이 만든 곰삭은 감칠맛

10시 30분, 열차는 제시간보다 약 10분 늦게 목적지인 광천역에 다다랐다. 용산으로 달려가는 열차를 뒤로하고 역사를 빠져나오자 젓갈시장이 코앞이다. 광천은 논산의 강경과 더불어 젓갈 삭는 냄새로 향긋한 고장이다. 최종목적지인 천북으로 향하는 버스는 약 2시간마다 한 번씩 운행되는데 다음 차편은 11시 20분이었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시장으로 향했다.

곰삭은 젓갈 냄새보다 먼저 외부인을 맞는 것은 김 굽는 냄새다. 김은 젓갈과 더불어 광천의 또 다른 명물이다. 김 굽는 냄새는 기어이 발걸음을 세우고 물끄러미 점포 안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점포의 유리문 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고소하고 짭조름한 김 냄새에 쌀밥 한 그릇이 간절했다.

평일 오전이라 드나드는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젓갈시장은 점포마다 장사 준비로 분주했다. 금강이 하구에서 물막이되기 전, 천수만 바닷물은 광천까지 발을 뻗쳤다. 밀려드는 바닷물을 따라 배들이 자연스레 포구로 드나들었다. 상권의 형성 또한 자연스러웠다. 독배라고 불렸던 광천의 옹암포구는 안면도와 연안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과 젓갈의 거래로 번성했다. 그러나 물길이 막힌 포구의 살 길은 막막했다. 자연스레 형성됐던 상권은 자연스레 죽어갔다. 숨통이 막힌 포구는 옛 명성에 기대어 근근이 연명했다.

살길은 예상치 못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난 1960년대, 애써 만든 새우젓의 변질을 두려워했던 몇몇 주민들이 인근 오서산 곳곳에 뚫린 토굴로 향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쓸모 있는 광물들을 채굴해 열도로 보내고자 오서산 곳곳에 굴을 뚫었다. 물론 삽질은 조선인들의 몫이었다. 한동안 방치돼 있던 아픈 역사의 흔적은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해 새우젓의 보존 창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뿐만 아니라 맛까지 더 깊어졌다. 이곳이 살길임을 직감한 주민들은 너도나도 토굴로 밀려들었다. 새우젓의 맛에 대한 소문은 다시 먼 곳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더불어 상권도 부활했다. 멸치젓, 어리굴젓, 조개젓, 오징어젓, 명란젓, 황석어젓 등 다양한 젓갈들의 삭는 냄새로 시장은 바쁘지만 누가 뭐래도 주인공은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크게 오젓, 육젓, 추젓으로 나뉜다. 그중 육젓은 새우젓의 왕이다. 매년 6월경에 잡히는 새우로 담근 육젓은 오젓, 추젓에 비해 큰 어체(魚體)로 구별된다. 약 100일간의 숙성을 거쳐 추석께 시장으로 나오는 육젓은 김장용으로 인기다. 가격 또한 오젓, 추젓에 비해 높은 편이다. 오젓은 말 그대로 5월경에 잡히는 새우로 담근 젓갈로 육젓보다 무르며 주로 조리용으로 쓰인다. 가장 하급인 추젓은 10월경에 잡힌 녀석으로 담근 젓갈로 잔잔한 어체처럼 맛도 가볍다. 서해에서 잡히는 새우의 물량으로는 높은 인기를 감당하지 못해 목포 앞바다나 강화도 부근에서 잡힌 녀석으로 젓갈을 담그기도 한다고 한 젓갈집 주인이 귀띔했다. 하지만 그 맛은 온전히 토굴과 소금에서 나오는 것이니 새우의 출신지역은 그리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첨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인이 건네준 잘 익은 육젓을 곱씹어보았다. 단단한 살이 씹힌다. 짠맛 주변에서 은은한 단맛이 감돈다. 그 단맛의 근원을 주인에게 묻자 천일염의 맛이란다. 육젓이 담긴 드럼통 안에 고인 젓국물이 희고 맑다. 빛깔다운 맛이다.
 

   
 


 △굴맛이 꿀맛인 천북

버스는 약 40분을 달려 보령시 천북면 장은3리 포구에 위치한 '천북 굴단지'에 도착했다. 포구 주변으로 파란 함석지붕을 뒤집어쓴 굴구이집 수십 개가 길게 늘어서 성업 중이다. 점심시간을 맞은 굴단지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철 굴을 맛보러 온 외지인들로 바글거렸다.

굴은 제철이 겨울이다. 8월에 산란기를 끝낸 굴은 가을부터 살을 찌운다. 통통하게 차오른 살은 11월부터 2월까지 절정을 이룬다. 맛 또한 이때가 절정이다. 기수역(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천북 지역의 굴은 그 맛과 영양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다. 천북이 굴 구이의 '원조'임을 자처하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천북 굴단지는 한겨울 포구에서 추위를 피하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불을 피우고 굴을 구워 먹던 어민들로부터 비롯됐다. 포구 주변 곳곳에 흩어져있던 굴 구이 포장마차들이 지금의 자리로 모여들어 군락을 형성한 것은 90년대 말쯤부터다. 이후 굴 구이는 천북 지역의 별미로 자리 잡았다.

너무 잘은 굴은 구이로 적당치 않다. 껍데기 길이가 6~7㎝는 돼야 속살도 구워 먹을 만한 크기에 다다른다. 이 길이까지 자라는데 자연산은 약 3년, 양식산은 1년가량 소요된다. 때문에 구이만큼은 굳이 양식산을 찾는 이들도 꽤 된다. 구이로 적당치 않은 크기의 자연산 굴은 주로 횟감으로 소비된다. 가격은 대야 한 사라에 2만 5000원(서해굴집:041-641-8710)으로 서너 명이 술안주로 실컷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굴 구이 외에도 굴밥, 굴 칼국수, 굴전 등 다양한 음식들이 메인 메뉴에 올라있다. 그중 굴밥은 굴 구이로 적당히 채워진 뱃속을 달랠만한 별미다. 굴과 밤, 인삼과 대추, 은행과 표고버섯 등 10여 가지 재료로 지어진 굴밥은 한 눈에도 의식동원(醫食同源)의 의미를 실감케 한다. 김 가루와 참기름에 양념장까지 버무려진 굴밥의 향기와 맛은 굴 구이만으로 미처 채우지 못했던 찰나의 아쉬움에 방점을 찍는다.

 △ 차 한잔의 여유

배를 채우고 나자 풍경이 눈에 든다. 언덕에 올라서자 굴 구이집 파란 함석지붕이 보색처럼 눈에 든다. 바람에 쓸려온 물결이 방파제와 부딪혀 흰 거품을 내뿜었다. 해풍의 격렬한 빗질에 맞서 기울어진 나무들이 우웅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펜션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헐거운 철기둥위에서 삐거덕거렸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곳에 펜션이 입지해 있었다. 그 부근에 시끄럽게 먹고 마시면 안 될 듯한 분위기의 찻집이 하나 있었다.

영화 '시월애'의 이름을 그대로 딴 찻집 안은 잔잔했던 영화 속 정경처럼 고요했다. 나는 바다가 굽어보이는 창가에 자리 잡았다. 오후 3시를 넘긴 겨울 하늘은 사위어가는 햇빛과 구름이 엉기어 어슴푸레 밝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못다 읽은 소설책 한권을 꺼내 펼쳤다. 버번콕(Bourbon Coke)은 한 모금마다 책장을 10여 페이지씩 밀고 나아갔다. 읽은 책장의 무게가 남은 책장의 무게를 역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용산발 서대전행 열차가 경기도 어딘 가 쯤에서 광천역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p.s. 서대전행 직통열차 역시 하루에 한번(오후 6시 41분) 광천역에 머문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장을 돌아보며 젓갈을 구입하는 것도 여유시간을 뭉개기에 좋은 방법이다. 굳이 머물 이유나 여유가 없다면 자주 오가는 장항선 천안행 열차를 타고 경부선으로 갈아타 대전역으로 돌아오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천안을 경유해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도 번거롭기는 매한가지다. 뿐만 아니라 야간에는 바깥 풍경이 보이지 않아 열차 여행의 묘미도 오전만 못하다. 이왕이면 돌아가는 길 역시 아침에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게 귀한 여행을 더욱 귀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 까 싶다.


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