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추워서 복된 생명체들로 바글거리는 물속은 풍요롭다. 아랫목에 누룽지마냥 눌어붙어있어야 겨우 평안을 찾는 사람들만 있었더라면 한겨울 물속은 더욱 풍요로웠을 터이다. 물 아랫것들에게는 안타까우나 계절에 맞서는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 삭풍은 매울수록 즐겁다. 삼한(三寒)에 사한(四寒)까지 덮친 진천 백곡저수지는 얼어붙어 쩍쩍 갈라지는 수면이 질러대는 비명과 아이들의 웃음으로 아우성이었다.


1. 빙어 드문 빙어의 낙원

빙어낚시의 묘미는 단순함에 있다. 값나가는 낚싯대 몇 개를 물속에 드리우는 구색 따위를 갖출 필요가 없다. 빙어낚시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낚싯대는 견지대다. 6~10개 안팎의 가지바늘을 매단 외줄채비가 주로 쓰이는 데, 가격은 견지대 포함 2000~3000원 내외로 저렴하다. 미끼로 쓰이는 구더기의 가격 역시 비슷하다. 미리 준비하는 것보다 저수지 인근 가게에서 구입하는 게 덜 번거롭다. 딱히 바가지를 씌울만한 물건도 아닐뿐더러 씌우더라도 애교로 봐줄만한 가격이다.

빙어낚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얼음구멍 뚫기다. 보통 '써래'라고 불리는 쇠막대기로 얼음구멍을 뚫는데, 그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지난한 작업 끝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뽈록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면 빙어낚시의 반 이상이 끝난 셈이다. 빙어를 잡으면 살려둘 사발모양의 얼음구멍 뚫기도 위 작업과 다르지 않다. 이것조차 번거롭다면 먼저 다녀간 이들이 뚫어놓은 얼음구멍을 재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멍은 대개 빙어의 입질이 없어 포기하고 다른 포인트로 떠난 흔적이다.

빙어는 무리지어 깊은 수심을 따라 이동한다. 따라서 미끼는 바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어야 한다. 미끼를 매단 낚싯줄을 물속으로 조금씩 드리우다보면 바닥과 봉돌이 맞닿는 미세한 충격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이때부터 미끼를 상하로 살짝 들었다 놓는 고패질로 빙어의 입질을 유도한다. 톡톡거리며 입질이 오는데 이때 바로 채비를 걷으면 안 된다. 한 마리가 미끼를 물면 줄줄이 미끼를 무는 습성 때문이다. 입질이 전혀 없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 얼음 구멍을 뚫는 게 옳다. 속으로 깊게 흐르는 물길을 따라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상, 빙어는 잡히는 포인트에선 줄줄이 잡히고 잡히지 않는 포인트에선 하세월해봤자 한 마리 구경조차 어렵다. 뚫어놓은 구멍이 아깝다고 한 자리에 집착하다간 손맛 한 번 못보고 되돌아가기 십상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손맛도 입맛도 즐거워진다.

안타깝게도 빙어의 입질은 오지 않았다. 기자들의 엉성한 낚시질 때문만은 아닌 듯 싶었다. 선수 급으로 보이는 강태공들과 어설퍼 보이는 강태공들의 상황도 매한가지였다. 청주에서 발걸음 했다는 한 강태공은 "작년엔 많이 잡혔는데, 올해는 2시간 내내 기다려도 기별이 없다"며 "베스가 빙어를 다 잡아먹어 씨가 말랐다"고 투덜댔다. 사람들은 얼음 위에서 빙어대신 컵라면과 삼겹살 구이 등으로 속을 데우며 추위에 꼬였던 내장을 풀었다. 배부른 아이들은 부모를 졸라 썰매를 빌려 저들끼리 얼음 위에서 부딪히고 미끄러지며 까르르댔다. 간혹 빙어회와 튀김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출처를 물었지만 모두 인근 가게에서 조달한 것들이었다.

얼음 위에서 기약 없던 빙어는 수족관 속에서 퍼덕이며 외지인들을 낚고 있었다. 녀석들의 본적지는 제천, 당진 등 다양했다. 외지인들은 외지에서 들여온 빙어를 사다가 현지의 얼음 위에서 먹었다. 동시에 서너 곳의 지명이 포개지는 사소한 사기극에 사람들은 즐겁게 속아 넘어갔다. 빙어가 잡히느냐 아니냐는 이들에게 의미 없는 듯 보였다. 빙어를 튀겨내는 현지 잡화점 주인의 손길이 바빴다.

 

   
 

2. 날 것 그대로의 풋풋함

빙어가 잡히지 않아도 주변 음식점들은 빙어요리를 내오느라 바쁘다. 다양한 요리들이 있지만 빙어는 주로 회와 튀김으로 소비된다. 빙어회는 접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있어선 몬도가네의 전형이다. 사발에 담긴 빙어를 산채로 초장에 찍어 먹는 모습은 세발낙지를 통째로 씹어 먹는 모습보다는 점잖지만 그래도 꽤나 원초적이다. 날 것을 산채로 집어먹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튀김을 선호하지만 누가 뭐래도 빙어는 회로 먹어야 제 맛이다.

날 것에 대한 낯설음은 익힌 것들에 대한 익숙함이 가지지 못한 묘한 중독성을 내재하고 있어 일단 발을 들이면 다시 찾지 않고는 못 배긴다. 그래서 한 번 날 것에 맛을 들인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횟집 수족관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익힌 것을 먹고 산 세월보다 날 것을 먹고 산 세월이 훨씬 더 많았다.

대개 나무젓가락으로 빙어를 집어먹지만 경험상 맨손으로 집어 먹는 게 더 맛있다. '손가락에 물든 은은한 빙어의 체취가 집어먹을 때마다 코끝에 가까워지기 때문 아닌가'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지만 근거는 없다. 어떻게 먹든 '맛있으면 장땡'이다.

겨울 빙어의 체취는 봄나물처럼 싱그럽다. 한 마리를 집어 들어 코끝에 가까이 대자 물기 가득 머금은 오이 냄새가 확 몰려든다. 씹으면 툭하고 터지는 몸통사이로 잔뼈들이 서걱거리다 입 안에 고소한 감칠맛이 감돈다. 비린 물속에 살면서도 비린내를 거느리지 않는 빙어는 소멸의 계절 속에서 홀로 풋내를 뿜어내며 발랄하다. 빙어의 수명은 약 1~2년가량인데 그 단편소설 같은 짧은 생이 마치 모두 유년 시절만으로 채워져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곤 한다. 어체(魚體)의 크기에 관계없이 모든 빙어는 어려 보였다. 투명하고 잔망스러운 몸통 속에 담겨있을 빙어의 노화와 자연사의 운명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퍼덕이는 빙어 세 마리를 한꺼번에 집어 들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아삭아삭한 식감 주변에서 수박향도 돋아난다. 겨울의 맛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몫이다.

   
 

3.두 외래종의 엇갈린 운명에 대한 단상

빙어는 연어, 송어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다. 일본 홋카이도, 러시아 연해주, 미국 알라스카 앞바다와 인근 하천을 주요 서식지로 하는 빙어는 이름처럼 차가운 물과 친하다. 본디 동해안 북부 하천 일부에만 살던 빙어를 제천 의림지 등에 이식한 게 1925년의 일이다. 수온에 민감한 빙어는 깊은 물속에서 조용히 여름을 나며 토종 물고기의 텃세를 피하다 겨울에야 비로소 무리지어 활개 친다.

저수지 생태계의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빙어는 남한 전역의 저수지에서 평화롭게 번성했다. 다른 물고기들이 동면하는 동안 기지개를 편 빙어는 내수면 어민들에게 짭짤한 부수입을 안겨주며 겨울철 대표 민물고기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빙어는 다문화 민물 생태계 속에 모범적으로 뿌리내렸다.

그러나 빙어의 시련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지난 1973년, 수산청은 어민소득증대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베스를 도입했다. '번식력이 좋은데다 덩치도 크니 발라먹을 것도 많고, 맛도 그만하면 괜찮으니 들여와도 문제될 것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터이다. 수산청의 기대대로 베스는 대한민국 민물 생태계에 빠르게 적응하며 개체수를 늘려나갔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물 생태계는 베스의 고향 북아메리카보다 너무 유순했다.

어종과 계절 따위를 가리지 않는 포식자 앞에서 대한민국 민물 생태계는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듯 외래종 베스는 순식간에 생태계 최상위층의 권좌에 올랐다. 은어, 피라미, 모래무지, 붕어, 잉어, 민물새우 등 토산어종이 곳곳에서 차례로 멸족 당했다. 먹이가 떨어지자 녀석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권력싸움을 벌였다. 구태여 천적을 피하지 않는 꼿꼿한 천성을 지닌 빙어가 베스의 손쉬운 토벌 대상이었음은 물론이다.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만날 일조차 없었을 두 어종간의 갈등 속에서 빙어는 백전백패였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한 사람들은 베스를 생태계 교란어종으로 낙인찍으며 단속에 들어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평양을 건너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 베스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가? 잘 먹고 잘 살아보자고 베스를 푼 사람들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가? 올 겨울에도 베스는 최선을 다해 빙어를 잡아먹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베스를 거두어들인 빈자리에 빙어의 수정란을 방류하고 있다.

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