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말 맑은 날의 겨울햇살은 봄의 실마리를 품고 있었다. 공암교로 내리 쬐이던 겨울의 오전 햇살은 아침 동살 속에선 꿈꿀 수 없었던 온기로 목덜미를 간질였다. 길가에 늘어선 벚나무들이 가지마다 좁쌀만 한 새순을 돋아내기 시작했다. 겨울햇살의 실낱같은 온기는 빈 나뭇가지의 완강한 껍질 속으로 고요하고도 깊게 스며들어 봄을 예비하고 있었다. 이르면 두 달 뒤 마른 나뭇가지로 하얀 꽃송이를 뿜어낼 나무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밋밋한 나날 속에서 만나는 자그마한 환희다. 지나가는 겨울도 즐기고 다가올 봄도 느끼기 위해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이상한파가 잠시 숨을 고르던 주말, 겨울 안에 고여 묵은내를 풍기던 사람들 몇이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공암교 부근에 모였다. "하루 종일 원 없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던 나재필 논설위원의 한 마디가 발단이었다. 발단은 사진부 우희철 부장에 의해 구체화됐다. 구체화 된 길은 32번 국도가 산의 몸통을 관통한 이후 버려진 대전~공주 간 옛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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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영 기자(뒤)와 이형규 기자가 마티고개를 넘어 공주 방향으로 걷고 있다. 뒤로 보이는 4차선 도로가 과거-현대를 교차하는 듯하다. |
1. 사라져 가는 것들
도시와 시골의 경계는 행정구역을 나누듯 개념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서울 사람들이 교외를 시골로 느끼는 반면, 시골 사람들은 읍내를 도시로 느끼듯 상대적인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길 코스 초입 공암교 부근은 누구나 시골이라고 인정할만한 오래된 풍경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갓길 구석 담벼락에서 마른내를 풍기던 시래기였다. 겨울바람에 늘어진 채로 동결 건조된 시래기는 사소한 손길에도 바삭거렸다. 한때 김장의 우수리로 하찮게 여겨졌던 구황식품 시래기는 이제 대표적인 다이어트 웰빙식품이다. ‘마르는 과정에서 비타민과 무기질을 비롯한 기타 영양 성분이 농축되는 저 열량·고 식이섬유 웰빙식품’이라는 상찬이 시래기를 향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시래기가 된장국 속에 풀어내는 밑바닥의 쓸쓸한 맛과 텁텁한 빛깔 앞에서 이 같은 신분상승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시래기는 그냥 시래기였으면 좋겠다.
반포면사무소를 지나치기 전에 만난 '약방'간판은 '구판장'만큼이나 낯설고도 반가웠다. '약방'의 주인은 법적으로 폐지된 약종상 면허 소지자들이다. 의사의 처방에 따른 조제를 할 수 있는 약사와 달리 약종상에겐 매약(賣藥)만 허락돼있다. 제도 폐지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인정받는 부동산 중개업자처럼 약종상역시 기득권을 인정받아 영업 중이다. 더 이상의 면허발급만 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약종상이 사망하면 약방은 영원히 문을 닫는다. 새 도로가 개통되면 폐지돼 관리의 손길로부터 벗어나는 구 도로의 운명도 약종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간판에 머무르는 시선이 길었다.
2. 길의 생로병사
반포초등학교를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산길로 접어드는데 대전~공주 간의 옛길의 진정한 시작은 여기서 부터다. 옛길의 법적인 죽음은 새로운 길이 닦인 날부터다. 현행 도로법 제 28조 제 1항은 '도로 관리청은 제 27조에 따라 새로 건설된 국도 또는 국도대체우회도로의 사용을 개시하는 경우 기존 국도 구간에 대하여는 같은 조에 따라 국도로서의 사용을 폐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마티터널이 준공되기 전, 사람들은 대전과 공주를 오가기 위해 마티고개를 넘어야 했다. 자동차 역시 고갯길을 피할 수 없었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파행하는 마티고개는 쉽게 목적지를 내주지 않음으로서 고갯길의 위엄을 보였다. 추풍령, 문경새재, 죽령, 대관령 등도 그러했다. 그러나 터널 준공과 동시에 자동차들은 산허리를 헤집어 만든 거대한 신작로의 구멍 속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 또한 그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상인들은 발을 뺐고 사람이 끊긴 버스정류장과 휴게소는 폐허로 변했다.
마티고개의 위엄은 산 밑동의 빈 터널을 따라 바람 빠지듯 사라졌다. 산의 몸통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건설된 높이 6.9m, 길이 700m, 너비 8m인 왕복 4차선 터널은 대전-공주간의 거리를 수십 분이나 단축시키며 마티고개를 퇴물로 전락시켰다. 그렇게 옛길은 법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폐지' 절차를 겪었다.
물론 이 같은 도로법상의 '폐지'는 적극적인 '파괴'나 '폐쇄'를 의미하진 않는다. 동조 제 2항은 '제 1항에 따라 폐지되는 국도 구간의 관리청은 그 구간이 속하는 지역을 관할하는 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에게 폐지사실을 통보하여야 한다. 이 경우 통보를 받은 도지사 또는 특별자치도지사는 폐지되는 국도 구간에 대하여 새로이 도로의 노선을 인정하고 새로운 도로의 관리청으로서 이를 관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동조 제 3항은 '도지사는 제2항에 따라 도로 노선을 인정하는 것이 곤란하면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관할 시장이나 군수에게 통보하여야 한다. 이 경우 통보를 받은 시장이나 군수는 폐지되는 국도 구간에 대하여 새로이 도로의 노선을 인정하고 새로운 도로의 관리청으로서 이를 관리하여야 한다.'며 제 2항의 내용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로법상의 '폐지'는 관리주체의 하향식 이전과 책임 전가를 의미할 뿐이다. 제 4항은 없다. 책임전가의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는 제 3항에 규정된 기초자치단체가 깔려있다. 사실상 길로서의 존엄을 잃어가고 있는 대전-공주 간 옛길의 관리주체는 이제 도로법 제 28조 제 3항에 규정된 기초자치단체, 공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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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티고개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는 회색으로 바래어지며 삭아 들어가고 있었다. 도로법상 관리의 손길을 벗어난 옛길은 곳곳에서 숨구멍을 틔웠다. 땜질의 흔적은 많지 않았다. 얼음입자로 반짝이는 나뭇가지 사이로 저 멀리 신작로가 아득했다. 곧게 뻗은 신작로는 마티터널을 향해 질주했다. 오가는 차량을 죄다 신작로에게 내준 구부정한 옛길은 이제 트레킹과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의 낙원이다. 옛길의 고요함 속에서 10여 년 전 마라토너 이봉주는 시드니 올림픽 대비 집중훈련을 위해 한 달간 마티고개를 뜀박질로 오르내리며 전의를 다졌었다.
중장비로 산허리를 구멍 내는 무지막지한 광경을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의 길 닦기는 자연 현상에 가까운 지난한 작업이었다. 물이 산하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파고들어 흐르듯, 옛길은 사람의 두 발로 닿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부분을 따라 보폭을 이어나갔다. 옛길은 두 발로 증명되는 부분만을 모아놓은 결정체였다. 물 흐르는 곳 주변이 풍경과 조화로워 아름답듯, 옛길 주변 또한 풍경에 맞서지 않아 아름다웠다. 그러다보니 옛길은 두 발과 두 바퀴로 풍경을 저어가려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풍경을 일부나마 소유하려는 찍사들의 단골이기도 하다. 풍경과 적극적인 치정관계로 얽히고 싶은 몇몇은 옛길 주변에 전원주택을 짓기 위한 터를 다지고 있었다.
마티고개는 산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고 언덕이라고 부르기엔 넘치는 지점(해발 203m)에 자리 잡고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거대한 느티나무가 가장 먼저 길손들을 맞는데 그 느티나무 옆으로 허름한 행색의 작은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산사원'이라는 간판을 내건 이곳은 마티고개에서 영업 중인 유일한 매점으로 라면도 팔고 동동주도 팔며 휴게소 및 산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문 옆에 걸린 벽시계는 멈춘 지 오래였다. 국회의원 배지를 뗀지 오래된 누군가의 이름이 박혀있던 낡은 벽시계는 멈춰있음으로서 허름한 건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고갯길 아래의 세상으로 편입되길 거부한 이곳에서 구태여 시간을 다투고 확인하는 일은 부질없어 보였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해발고도에 서자 고갯길 밑동을 관통한 32번 국도가 봉우리의 외곽선을 따라 뱀처럼 기어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산하를 굽어보며 감탄사를 흘리는 맛에 비할 바는 아니나 평균 이상의 풍경이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니 발걸음의 수고로움을 잊는다. 고된 발걸음 없어도 충분한 눈요깃거리를 보상받다보니 걸어서 마티고개를 찾는 이들의 평균 연령은 꽤 높은 편이다. 풍경과 한참을 독대하던 노인 몇몇이 올라왔던 길을 따라 그대로 하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겐 고갯마루에 오르는 일 자체가 산행이나 다름없는 듯 했다.
4. 또 다시 현실로
고갯길 내리막은 각종 카페와 전원주택들과 더불어 3㎞가량 이어지다 신작로와 합류한다. 고요한 옛길에 잠시나마 익숙해진 몸은 곧게 뻗은 왕복 4차선 국도의 요란함을 낯설어했다. 고갯마루에서 조망했던 신작로와 자동차는 풍경의 일부로 느껴져 편안했는데, 갓길에 서서 바라보자 풍경과 동떨어진 사물로 느껴져 불편했다. 질주하는 자동차를 가까이서 바라보기 어려워 주춤거렸다. 걸어오는 뒤편으로부터 덤프트럭 한 대가 찬바람과 함께 달려들었다. 차도로 한 발짝만 잘못 들어서면 죽음이 코앞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바람 속에는 덜 연소된 경유의 냄새가 스며들어있었다. 길이란 본디 두 발로 먼 곳을 가까이 당기는 수단이었을 터인데, 그러한 과정을 과감히 생략시키고 사유화된 공간의 연장인 자동차만 넘쳐나는 신작로는 살벌했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격리된 너른 도로는 최선을 다해 달리는 차들로 삼엄했다. 똥개 한 마리가 타이어에 짓이겨진 어린 고라니의 피를 핥다가 사람에 놀라 주춤거렸다. 눈치를 보던 똥개는 며칠간 주렸는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 땅의 서정과 풍경의 아름다움과 살아있는 것들을 향한 존엄이 속도라는 획일화된 가치 앞에서 무력해지는 사태가 난감했다.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길이 위로 받아야 하는가?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낸 사람이 위로 받아야 하는가?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품은 옛길 위에서 위로받아야 할 쪽은 후자로 보였다.
고작 몇 시간 걸었다고 허기가 몰려온다. 멀지 않은 앞쪽에 찐빵집 간판이 보인다. 당대의 모든 고상한 가치는 다가올 한 끼 앞에서 힘을 잃는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다시 신작로 갓길로 들어서고 발걸음의 속도 또한 다시 바빠진다.
글=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사진=우희철·김호열 기자 photo291@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