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온기 넘치는 너를 이 겨울에 어찌 잊을소냐. 호주머니 가벼운 사람들도 하굣길이나 퇴근길에 오뎅 국물 한 모금이면 추위가 스르르 녹는다. 우희철 기자 photo291@cctoday.co.kr |
1. ‘오뎅'은 '오뎅'이어야 맛있다
도시의 겨울은 오뎅 국물 냄새와 운명을 함께한다. 절기와 관계없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는 거리마다 점조직으로 피어나는 노점상들이다. 겨울보다 먼저 거리를 찾아온 오뎅 국물은 겨울 보다 조금 늦게 물러가는데 그 흥망성쇠는 체감상 겨울과 대체로 일치한다. 거리에서 오뎅 국물 냄새가 흐려지는 시점은 목련의 새순이 부풀어 오르고, 산수유 꽃이 산하를 파스텔 톤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는 때다. 오뎅 국물 냄새는 겨울의 냄새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같은 계절 편향적 발언에 토를 다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성 싶다.
찬바람 속으로 입김을 내뿜는 오뎅 국물의 유혹에 저항할 만한 강심장은 많지 않다. 얄궂게도 그 유혹의 절정은 하굣길과 퇴근길 버스 정류장 부근이다. 바쁜 일상과 맞닿아 정신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떡볶이, 김말이, 만두까지 무리지어 달려드니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삐끼 역할에 성공한 오뎅 국물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완강한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드나들며 지갑을 열어젖히는데, 그 퍼가는 쌈짓돈은 사소한 편이이서 사람들은 괘념치 않는다. 추울 땐 그저 종이컵 속 따끈한 오뎅 국물 한 모금이 진리다.
연말연시 혹은 선거 때면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성지순례 하듯 들러 한 입 베어 물고 가는 '친서민적' 먹을거리 오뎅은 유감스럽게도 일제의 흔적이다. 때문에 '어묵'이라는 순화된 표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오뎅'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된 사태를 탓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오뎅'에 '어묵'이라는 이름은 너무 근사해 거리감이 느껴져 지갑을 열기 쉽지 않다. 대형마트 진열대에 '어묵'이라는 이름으로 놓여있는 것들은 대개 '오뎅'보다 비쌀 뿐만 아니라 포장지 때깔도 남다르다.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간혹 '어묵탕'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녀석 또한 '오뎅' 수십 개비 가량은 먹어줘야 나올만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언젠가부터 '오뎅'과 '어묵'은 '친서민적'이라는 이름의 벽을 사이에 두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오뎅'은 '오뎅'이어야 부담 없고 맛있다.
2. 이제는 우리의 국물, 오뎅 국물
우리의 '오뎅'은 일본의 '오뎅'과 다르다. 일본의 '오뎅(おでん)'은 갖가지 재료로 맛을 낸 국물에 어묵과 무, 곤약, 소 힘줄 등을 넣어 끓인 전골 요리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뎅'은 탕 속에 들어가는 식재료 그 자체를 일컫는다. 요리의 이름이 재료의 이름으로 와전된 셈이다. 우리의 '오뎅'과 일본의 '오뎅'은 동음이의어다. 또한 대한민국 사람들은 따뜻한 국물을 마시기 위해 '오뎅'을 찾지만, 일본 사람들은 '어묵' 그 자체를 먹기 위해 '오뎅'을 찾는다. 이제 대한민국의 '오뎅'은 독자적인 국물 문화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오뎅의 유입 시기는 개화기로 알려져 있다. 당시 개항장이었던 부산항에 정착한 일본인들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오뎅이 원조임을 자처하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부산오뎅은 높은 연육의 함량 비율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배합, 숙성기술 때문에 다른 오뎅에 비해 비싼 편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오랫동안 삶아도 흐물거리지 않고 그 맛을 유지하는 부산오뎅은 비린내 나는 오뎅 시장에서 수십 년째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오뎅의 주된 원료는 생선살이다. 특별히 어종을 가리지 않아 명태, 대구, 갈치, 조기 등 기호에 따라 다양하게 쓰인다. 오뎅은 생선살을 밀가루 등과 반죽해 가열, 응고시켜 만든다. 한때 내장, 머리, 뼈 등 못 먹을 부위로 비위생적으로 오뎅을 만든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오뎅은 흰 살 생선의 살, 연육으로만 만든다.
|
|
|
|
3. 오뎅 한 개비의 위로
눈치 보는 데 익숙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있어 길거리 노점상 오뎅 한 개비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자그마한 위로다. 혼자 밥 먹는 일을 무리와의 단절로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홀로 길거리에 서서 오뎅 국물을 홀짝거리는 일까지 치욕으로 여기진 않는다. 공중목욕탕에서 발가벗는 게 당연하듯, 홀로 오뎅을 씹건 단체로 씹건 누구도 가타부타 신경 쓰지 않는다. 노점상은 홀로 허한 속과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거기에 잔술까지 더해지면 더 좋다.
한 겨울 저녁 배가 꺼질 무렵이면 노점상 안은 양복 입은 샐러리맨, 새침한 아가씨, 여드름 가득한 학생, 말없는 노인, 칭얼대는 어린아이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로 부산하다. 한 개비를 먹던 열 개비를 먹던 그 사람의 주머니 사정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지위고하, 남녀노소 불문하고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같은 먹을거리를 먹어대는 모습은 불공정사회에 몇 안 남은 공정사회의 모습 같아 정겹다. 그래서 국물만 홀짝 거린 듯한데 늘 예상을 뛰어넘는 액수의 계산서를 뱉어내는 '오뎅바'는 낯설다.
오뎅은 대한민국에서 먹을 양을 정해 놓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먹을거리다. 얼마어치를 먹겠다고 정하는 손님도, 강요하는 주인도 없다. 손님이 오뎅 한 개비를 먹고 열 번 국물을 따라 먹건, 열 개비를 먹고 한 번 국물을 따라 먹건 주인은 느긋하다. 사실상 오뎅은 국물을 마시기 위한 핑계임에도 불구하고 국물 값을 받는 주인은 없다. 삭막한 도시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인정이다.
길거리표 오뎅 국물의 맛을 잊지 못해 집에서 재료를 사다가 흉내 내봐도 결과는 늘 신통치 않다. 오뎅을 많이 넣고 국물을 우려내야 제 맛인데 흉내 한 번 내보자고 그 많은 오뎅을 구입하기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노점상 주인은 가벼움 속에 머물러 있는 깊은 맛을 끄집어내는 연금술사다. 질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맡기듯 오뎅 국물은 노점상 주인에게 맡기는 게 속편하다. 오뎅 국물은 팔팔 끓는 냄비에서 떠먹는 것보다 은근하게 끓는 4각 '스뎅' 용기에서 떠먹어야 더 맛있다. 주인은 이문을 남기고, 손님은 값싸게 먹으니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오뎅 국물은 겨울이면 늘 예상할만한 장소에서 입김을 뿜어대고 있다.
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