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누아주의 이번 앨범은 올해 들어 가장 인상 깊은 앨범 중 하나이다.
뻔한 주제를 뻔하지 않게 다루는 역량이 대단하다. 2년 전 발표한 미니앨범도 좋았는데 역시..
솔루션스야 이제 뭐 믿고 듣는 밴드 아닌가?
4인조 밴드로 재편하고 완전한 밴드로 변신한 것도 반갑고,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한 음악도 즐겁다.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21. 하비누아주 ‘청춘’ㆍ솔루션스 ‘노 프라블럼’ 외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하비누아주 정규 1집 ‘청춘’= 내일의 밥을 보장해주지 않는 ‘열정페이’와 불안한 일자리 앞에서 처음과 같은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청춘은 없습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26일 발간한 ‘서울시민의 건강과 주요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10ㆍ20ㆍ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습니다. 특히 20대 사망자의 절반 이상(51.6%)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청춘은 더 이상 낭만의 언어가 아닙니다. 하비누아주는 희망고문에 지친 청춘의 일상을 서정적으로, 그러나 가슴 아리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청춘의 끝자락에서 “나는 매일 너의 눈빛을 읽어 내려 했지/후회 섞인 흐린 숨을 고르며/그날을 기억해”라며 돌이킬 수 없는 기억들을 아쉬움으로 돌아보는 ‘바람 부는 날’, 헤어지는 순간의 슬픔과 복잡한 감정을 “한 걸음 거릴 두고 떨리는 그림자/외면하며 고개 숙인 너” 같은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 ‘별빛도 보이지 않는’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어떤 사랑 노래보다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가 진솔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하비누아주의 음악이 가사에 걸맞은 자연스럽고 탄탄한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슬픔을 머금은 듯한 맑은 목소리는 이 같은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출을 합니다. 이는 하비누아주가 2년 전 선보인 미니앨범 ‘겨울노래’에서도 드러났던 강점이지요. 전작의 양적인 아쉬움은 이번 앨범을 통해 해갈됐습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곡은 앨범 타이틀과 동명곡인 ‘청춘’입니다. “이 목적 없는 청춘엔 냉기가 흐르지/도망치는 청춘은 눈물도 차가워” 같은 가사는 자아실현은커녕 생존이 최고의 목표가 돼 버린 청춘들의 슬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한 “큰 다리를 건너는 그림자를 봤어/그 언젠가 어둡고 황량한 길에서/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달리던 커다랗고 거친 나의 슬픔을” 같은 가사는 극적인 구성과 멜로디에 실려 뒷목을 뻣뻣하게 만듭니다. 음악이 현실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필요는 없어요. 울고 싶을 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 되니까요. 적막이 걷히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고 괴로우신가요? 그렇다면 이 앨범은 잠시나마 마음을 다독이는데 탁월한 선택이 될 겁니다.
▶ 솔루션스 미니앨범 ‘노 프라블럼(No Problem!)’= 여름에 어울리는 청량한 음악을 듣고 싶으신가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처럼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 수 있는 흥겨운 록 음악을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여기 해결책인 솔루션스(The Solutions)가 있습니다.
솔루션스는 록과 일렉트로닉을 절묘하게 결합한 세련미 넘치는 사운드로 각광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흥겹고 유려한 멜로디와 리듬은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 이상으로 매력적이죠. 솔루션스의 공연장이 늘 여느 EDM 클럽 이상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유입니다. 그랬던 솔루션스가 최근 매우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멤버 나루와 박솔의 듀오였던 솔루션스는 3년 동안 공연장에서 세션 연주자로 함께 해 온 권오경(베이스), 박한솔(드럼)을 정식 멤버로 받아들여 밴드로 거듭났습니다.
전작인 정규 2집 ‘무브먼츠(Movements)’에서 과감하게 전자음을 활용했던 솔루션스는 이번 앨범에선 밴드로 재편된 라인업을 강조하려는 듯 강렬하면서도 공간감 넘치는 밴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에 앞서 싱글로 선공개된 수록곡 ‘스테이지(Stage)’는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죠.
솔루션스는 이번 앨범의 녹음을 미국 마이애미에서 진행했습니다. 세계적인 프로듀서 지미 더글러스(Jimmy Douglass)가 프로듀서를 맡아 솔루션스의 작업을 도왔죠. 멤버들이 마이애미에서 맞았을 햇살의 청량감이 앨범 전체에서 느껴집니다. 다소 정교하다는 인상을 줬던 편곡과 연주에서도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SF 영화를 연상케 했던 전작의 앨범 커버와 비교되는 이번 앨범의 자유분방한 커버처럼 말이죠.
재치 있는 밝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앨범의 문을 여는 ‘노 프라블럼’을 지나면 타이틀곡 ‘러브 유 디어(Love You Dear)’의 단 번에 귀에 들어오는 강렬한 리프(반복악절) 연주와 멜로디가 귀를 자극합니다. 전작의 수록곡 ‘세일러스 송(Sailor’s Song)’을 연상케하는 진취적인 가사와 직선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인 ‘싱 앤드 플로(Sing and Flow)’과 몽환적인 리듬 연주에 실린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러브(L.O.V.E)’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곡들이죠. 더글러스와 함께 작업한 ‘러브 유 디어’ 마이애미 버전의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사운드도 들을 거리입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한글 가사의 도입입니다. 그동안 영어 가사로 노래를 불러왔던 솔루션스는 처음으로 과감하게 한국어 가사를 도입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어색하지 않느냐고요? 궁금하면 앨범 구입을. 솔루션스가 록페스티벌에서 선보일 무대가 기대됩니다.
※ 살짝 추천 앨범
▶ 지니어스 미니앨범 ‘럭키 미스테이크(Lucky Mistake)’= 이름 모를 외국 땅에서 한국인이 그 나라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묘한 느낌이 연출될까? 어두운 밤 선풍기 바람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듣기에 제격인 앨범. 수록곡 ‘Until I’m 88 Years Old’를 9분여로 늘린 연주곡은 참 좋은 안주이다.
▶ 프로젝트슘 두 번째 소설음반 ‘인 비트로(In Vitro)’= 소설과 음악의 결합으로 초현실을 빚어낸 ‘가상의 씨앗 슘’을 기억한다면 매우 반가운 앨범. 비록 단편소설이지만 프로젝트슘이 새롭게 펼쳐낸 뱀파이어의 생태는 섬뜩하고 날카롭다.
▶ 장재인 미니앨범 ‘리퀴드(Liquid)’= 의도치 않게 길어진 공백기가 빚어낸 깊은 시선을 담은 가사. 개성을 살리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이는 담백하면서도 다채로운 편곡. 기타를 잡지 않은 장재인도 매력적이다.
▶ 삐삐밴드 미니앨범 ‘pppb’= 난해함의 옷을 조금 벗고 그 위에 대중적인 감각을 입혔지만 삐삐밴드의 정체성이 어딜 가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튀는 사운드는 여전하다. 정규 앨범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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