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화전민의 노래'는 내가 올해 들은 모든 앨범들 중 가장 불온한 앨범이다.
그 불온함이 마음에 들어 다른 앨범들에겐 미안하지만 모두 제쳐두고 원탑에 세웠다.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23. 사이 ‘화전민의 노래’ 외
사이는 그동안 음악보다는 ‘라이프스타일’로 더 주목을 받아온 뮤지션입니다. 충북 괴산군으로 귀촌해 여유로운(이라고 쓰고 ‘게으른’으로 읽어야) 일상을 보내며 음악을 들려주는 그의 삶은 이미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은 조명을 받았습니다. 사이를 소개할 땐 ‘음악’보다 ‘귀촌’이란 키워드가 늘 앞서왔죠.
이번 앨범을 소개할 땐 잠시 ‘귀촌’이란 키워드를 뒤로 빼놓아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 앨범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내용물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합니다. “그만하면 바뀔 때도 됐는데/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오오, 부끄러운 봄/오오, 기억하는 봄”이라며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망각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는 ‘다시, 봄’, “사람들을 밟고 어디에 오를 수 있나/백성들을 속이고 무엇을 얻으려 하나/상처받은 사람들 호랑이가 될텐데/깨어난 사람들 사자가 될텐데”라며 국민을 기망하는 리더십을 질타하는 ‘총파업지지가’ 같은 곡들은 의미심장한 내용물의 대표격이죠.
하지만 이 앨범은 결코 무게로 청자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풍자하고 삶의 비애를 드러내면서도 연민하지 않는 긍정의 정서가 앨범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죠. “구름 위를 달리던 손오공의 마음/아하, 정말 신나는구나”라며 자연과 벗 삼은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산악자전거’, “젠장, 불혹은 무슨, 유혹 덩어리인 걸/그림자의 그림자 같은 걸”이라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완전하게 어른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불혹 블루스’는 그런 곡들이죠.
사이가 이 앨범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소박한 삶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소박한 삶이 2015년 대한민국의 이상향이 돼버린 걸까요.
※ 살짝 추천 앨범
▶ 유즈드카세트 정규 1집 ‘록 엔 릴스(Rock N Rills)’= 다국적 출신 멤버로 구성된 밴드가 대한민국에서 들려주는 빈티지 로큰롤 사운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여행을 하게 만들어주는 이방인들의 음악이 정말 즐겁지 아니한가?
▶ 더 그루(The Groo) 정규 2집 ‘시버러제이션(Civilization)’= 플라톤의 ‘동굴우화’,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유토피아……. 다소 무겁고도 철학적인 주제를 트렌디한 사운드로 소화해 펼쳐낸 밴드의 역량이 매우 인상적이다.
▶ 포(POE) 미니앨범 ‘화이트아웃(Whiteout)’= SF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광활한 공간감.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질감의 매력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 오랜만에 포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이어서 반갑다.
▶ 비치볼 트리오 미니앨범 ‘비치볼 트리오’= 메이저 신에 쿨과 코요태가 있다면, 인디 신에는 비치볼 트리오가 있다. 여느 댄스 뮤직 못지않게 신나는 빈티지 로큰롤 사운드와 즐겁고 솔직한 가사가 매력적이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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