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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추천 앨범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2015년 상반기를 빛낸 앨범 10개 (下)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7. 15.

좋았던 앨범들을 1차로 추려내니 20개가 훌쩍 넘어갔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차근차근 앨범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다.

13개 쯤으로 후보가 줄었을 때엔 그 중 하나를 빼는 일이 정말 괴로웠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니 겨우 10개가 남았다.

순위를 매기지 못하겠다. 기사에도 순위는 없다. 그냥 추리기만 했다.


기사가 너무 길어져서(그래봐야 재활용이지만) 상편과 하편으로 나눴다.


▶ 푸른곰팡이 옴니버스 앨범 ‘강의 노래’

▶ 강허달림 정규 3집 ‘비욘드 더 블루스(Beyond The Blues)’

▶ 두번째달 정규 2집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 빌리카터 미니앨범 ‘빌리 카터(Billy Carter)’

▶ 아시안체어샷(Asian Chairshot) 미니앨범 ‘소나기’

▶ 임인건 ‘올 댓 제주(All That Jeju)’

▶ 프라이머리ㆍ오혁 ‘럭키 유(Lucky You)’

▶ 피해의식 정규 1집 ‘헤비메탈 이즈 백(Heavy Metal is Back)’

▶ 하비누아주 정규 1집 ‘청춘’

▶ 혁오(hyukoh) 미니앨범 ‘22’



기사로 다루지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앨범은 3개이다.


▶ 김두수 정규 6집 ‘곱사무’

▶ 김일두 정규 2집 ‘달과 별의 영혼’

▶ 얼스바운드(Earthbound) 정규 1집 ‘행오버(Hangover)’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 앨범> 2015년 상반기를 빛낸 앨범 10개 (下)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임인건 ‘올 댓 제주(All That Jeju)’= 뭍사람들에게 제주는 무척 이채로운 공간입니다. 제주를 대한민국 땅이면서도 대한민국 땅이 아닌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과한가요? 제주국제공항을 빠져나와 올려다 본 하늘이 뭍에서 올려다 본 하늘과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 이들은 기자만이 아닐 겁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제주라는 공간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요? 이 앨범은 그 소박한 질문의 아름다운 해답입니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제주에 살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과 베이시스트 이원술은 지난해 말부터 제주를 소재로 만든 음악을 발표하는 프로젝트 ‘올댓제주’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완전히 제주도민이 다 된 장필순이 장엄한 애월의 금빛 낙조를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표현한 ‘애월낙조’는 그 시작이었죠. 이후 가슴 아픈 짝사랑을 애절하고도 우아하게 노래한 정준일의 ‘짝사랑’, 억척스레 제주를 지켜 온 설문대 할망들의 모습을 파도를 닮은 시원한 음악으로 그려낸 BMK의 ‘바람의 노래’, 아직 남아 있는 제주의 옛길을 따라 하도리 마을로 가는 여정을 담담하게 소화한 강아솔의 ‘하도리 가는 길’ 등 놓치기 어려운 멋진 곡들이 줄줄이 ‘올댓제주’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임인건의 연주곡 ‘평대의 봄’ ‘푸른 밤 푸른 별’이 추가로 더해져 하나의 옴니버스 앨범으로 완성됐습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이 앨범을 만든 임인건입니다. 임인건은 80년대부터 한국 최초의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활동해 온 재즈 2세대 대표 뮤지션입니다. 그는 박성연, 이판근, 강대관, 김수열, 이동기 등 재즈 1세대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며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그는 지난 2011년 즉흥 연주를 중시하는 재즈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미디를 활용한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을 받기도 했죠. 기교를 덜어낸 음악으로 돌아온 베테랑 연주자의 변신이 즐겁습니다.


▶ 프라이머리ㆍ오혁 ‘럭키 유(Lucky You)’= ‘천재 프로듀서’라는 찬사를 받다가 표절 논란에 휩싸여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프라이머리와 트렌드에 민감한 힙스터들을 사로잡으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의 만남. ‘핫한’ 뮤지션 두 명이 만난 것만으로도 저절로 관심이 가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싱글로 발매됐지만, 4곡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물은 사실상 미니앨범(EP)에 가깝습니다. 3곡을 수록하고도 미니앨범을 자처하는 앨범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앨범은 ‘이주의 추천 싱글’로 다루기엔 덩치가 큰 것 같군요.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참 잘 빠졌습니다. 과거 샘플 클리어(샘플을 곡에 사용하기 위한 허락을 받는 것) 문제로 인해 치렀던 곤욕을 의식한 듯 프라이머리는 이번 앨범에서 샘플링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라이머리의 대표곡 ‘시 스루(See Through)’처럼 한 번에 귀를 사로잡는 곡은 없고 다소 밋밋한 첫인상을 주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 앨범입니다. 

이 같은 연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오혁의 매력적인 톤을 가진 목소리입니다. 오혁이 이번 앨범을 통해 들려주는 목소리는 1993년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능적입니다. 자신의 밴드 혁오에서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음악과 목소리를 들려줬던 오혁은 프라이머리와 만나 세련미를 확보했습니다. 자이언티(Zion.T), 빈지노, 정기고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했던 프라이머리는 이번 앨범을 통해 아는 사람만 알던 오혁을 수면 위로 끌어냈습니다. 오혁의 이름을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요. 

이 앨범의 백미는 ‘공드리’에서 함께한 오혁과 김예림의 만남입니다.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몽환적이면서도 나른한 목소리의 조합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정말 달콤하군요.


▶ 피해의식 정규 1집 ‘헤비메탈 이즈 백(Heavy Metal is Back)’= 짙은 화장과 긴 머리, 가죽바지와 호피무늬 의상, 강렬한 기타 리프와 유려한 멜로디. 2015년에 이런 ‘쌍팔년도 헤비메탈’을 다시 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심지어 앨범 타이틀까지 당당하게 “헤비메탈이 돌아왔다!”입니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이런 음악이 세월을 돌고 돌아 신선하게 들리는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피해의식이 단순히 화려했던 과거의 유산을 추억하고 재현했을 뿐이라면 이렇게 관심을 모으진 못했을 겁니다. 앨범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피해의식은 과거의 유산을 모두 비틀어 재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 금발을 휘날리는 미남 보컬 대신 가발을 눌러 쓴 이른 바 ‘자유육식연맹’ 총재가 과장된 표정으로 프론트 맨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부터 파격입니다. 가사에서도 멋을 기대했다면 꽤 당황스러울 겁니다. “애 아빠가 나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라며 당혹감을 드러내는 ‘속도위반’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목부터 민망한 ‘사면발이’는 80년대 록발라드를 충실하게 재현한 사운드 위에 “아침 햇살에 깨어/난 습관적으로/그 곳에 손을 넣어/근데 이 가려움은 뭘까”라는 가사를 실어 실소를 자아냅니다. ‘러브 오브 식스티나인(Love Of Sixtynine)’에 대한 설명은…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죠. ‘음란마귀’가 도와줄 겁니다. 특히 ‘걸 그룹(Girl Group)’을 감상하실 땐 반드시 이어폰을 지참하시고요. 배경에 깔린 키보드 연주를 듣고 ‘야동’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의 시도는 꽤 멋있어 보입니다. 이 멋은 피해의식이 역으로 멋있는 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면 무리한 의견일까요? 

“통기타치고 젬베 따위 두드리는 병신 같은 너/실실 대며 흥얼거리는 거지새끼들/주둥이만 나불나불 힙합 좆밥 돼지들/질질 짜며 노래 부르는 감성게이들/사실 나도 너희들이 졸라 부러워/우리들도 너네처럼 하고 싶었는데”(‘헤비메탈 이즈 백’ 중)


▶ 하비누아주 정규 1집 ‘청춘’= 내일의 밥을 보장해주지 않는 ‘열정페이’와 불안한 일자리 앞에서 처음과 같은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청춘은 없습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26일 발간한 ‘서울시민의 건강과 주요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10ㆍ20ㆍ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습니다. 특히 20대 사망자의 절반 이상(51.6%)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청춘은 더 이상 낭만의 언어가 아닙니다. 하비누아주는 희망고문에 지친 청춘의 일상을 서정적으로, 그러나 가슴 아리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청춘의 끝자락에서 “나는 매일 너의 눈빛을 읽어 내려 했지/후회 섞인 흐린 숨을 고르며/그날을 기억해”라며 돌이킬 수 없는 기억들을 아쉬움으로 돌아보는 ‘바람 부는 날’, 헤어지는 순간의 슬픔과 복잡한 감정을 “한 걸음 거릴 두고 떨리는 그림자/외면하며 고개 숙인 너” 같은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 ‘별빛도 보이지 않는’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특별할 것 없는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어떤 사랑 노래보다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가 진솔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하비누아주의 음악이 가사에 걸맞은 자연스럽고 탄탄한 연주를 들려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슬픔을 머금은 듯한 맑은 목소리는 이 같은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출을 합니다. 이는 하비누아주가 2년 전 선보인 미니앨범 ‘겨울노래’에서도 드러났던 강점이지요. 전작의 양적인 아쉬움은 이번 앨범을 통해 해갈됐습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곡은 앨범 타이틀과 동명곡인 ‘청춘’입니다. “이 목적 없는 청춘엔 냉기가 흐르지/도망치는 청춘은 눈물도 차가워” 같은 가사는 자아실현은커녕 생존이 최고의 목표가 돼 버린 청춘들의 슬픔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한 “큰 다리를 건너는 그림자를 봤어/그 언젠가 어둡고 황량한 길에서/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달리던 커다랗고 거친 나의 슬픔을” 같은 가사는 극적인 구성과 멜로디에 실려 뒷목을 뻣뻣하게 만듭니다. 음악이 현실의 해결책을 제시해 줄 필요는 없어요. 울고 싶을 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힐링’이 되니까요. 적막이 걷히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고 괴로우신가요? 그렇다면 이 앨범은 잠시나마 마음을 다독이는데 탁월한 선택이 될 겁니다.


▶ 혁오(hyukoh) 미니앨범 ‘22’= 단언컨대 한국에서 데뷔 후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전 방위로 주목을 받은 밴드는 없었습니다. 밴드 혁오는 지난해 9월 미니앨범 ‘20’으로 데뷔해 아직 데뷔 만 1년차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오는 아이유를 비롯해 장기하, 타블로, 빈지노 등 선배 뮤지션들이 팬을 자처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앞 다퉈 혁오의 새 앨범 인증 사진 및 추천 글을 남길만큼 ‘핫(Hot)’한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최근 혁오의 리더 오혁이 프라이머리와 함께 작업한 이후, 혁오는 힙스터(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들의 아이콘을 넘어 대중적인 관심을 받게 됐죠.

혁오의 음악은 특정 장르로 정의내릴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르를 ‘혁오’라고 정의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합니다. 바로 세련미가 넘친다는 점이죠. 음악적으로 이번 앨범은 전작의 연장선상에 놓여있고, 큰 변화는 없습니다. 다만 혁오는 데뷔 앨범의 다소 거칠게 느껴졌던 음악적 질감이 아쉬웠는지, 이번 앨범에는 작정하고 잘 빠진 사운드를 담아냈습니다. 안정된 소속사를 찾았다는 것도 한 몫을 했겠죠. 매력적인 톤을 가진 오혁의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오혁은 1993년생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능적이면서도 깊은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이번 앨범에는 익숙해지면 떠나가 버리는 사람들과 그 관계들에 대해 노래한 타이틀곡 ‘와리가리’를 비롯해 ‘세틀드 다운(Settled Down)’ ‘큰새’ ‘메르(Mer)’, ‘후카(Hooka)’, ‘공드리’ 등 6곡이 담겨 있습니다. 비록 타이틀곡은 ‘와리가리’이지만 나머지 곡들 역시 타이틀곡 못지않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틀드 다운’과 ‘큰새’는 앨범보다 라이브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역동성을 품은 곡입니다. ‘후카’는 감각적인 뮤직비디오 영상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프라이머리ㆍ오혁의 협업 앨범 ‘럭키 유(Lucky You)’의 수록곡으로 김예림이 함께 했던 ‘공드리’는 혁오만의 목소리로 재정리돼 원곡의 몽환적이면서도 나른한 분위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연출합니다.

가장 ‘핫’한 밴드인 만큼 준비된 라이브 무대도 적지 않습니다. 혁오의 라이브가 궁금하시다면 오는 24~26일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바다향기테마파크에서 열리는 ‘안산M밸리록페스티벌’을 찾으세요.

123@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