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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1번 국도 도보여행(2009)

서울에서 대전까지 두발로 걸어가기 : 셋째날 - 2009년 6월 21일 (Part 1)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09. 11. 22.

- 2009년 6월 21일 - 

 

 

 

10시 10분에 기상했다.

기상해서 샤워를 한 후 발바닥에 생긴 물집과 갈라진 상처를 후시딘과 밴드로 대충 처리한 뒤 길을 나섰다.

어제 게임방 모니터에 말린 운동화의 상태가 걱정이다.

찜질방에 들어오기 전에 각종 종이를 신발속에 마구 쑤셔넣어 두었었다.

찜질방에 나갈 때보니 종이는 습기가 차서 젖어있었지만 신발은 나름 뽀송뽀송하게 말라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오전 10시 40분 찜질방을 나섰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맑고 햇빛이 짱짱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더위와의 싸움이 될 것 같다.

약간은 가방이 가벼워졌다.

내 마음의 무게도 과연 가벼워질까?

 

 

나와서 개폼잡고 셀카 한 장

저 티셔츠는 2년전 여자친구와 깉이 학교 고시반에 있을 때 체육대회 때문에 구입한 티셔츠이다.

오늘만 입고 버릴 티셔츠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천안은 시골 같았는데 지금 보이는 천안의 도심은 서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번화가다.

 

 

나는 길을 나섰다.

 

 

미술 갤러리도 보이고...

 

 

시외버스터미널도 보인다.

 

 

바로 옆에는 고속버스 터미널도 있다.

 

 

근처에 미스터 피자가 보였다.

근영양의 얼굴이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그냥 사진만 봐도 기분이 좋다.

예전에 근영양을 보고 썼던 시가 떠올랐다.

 

- 문근영 -

 

꽃송이다 피어나도

아름답긴 어려우며

 

아름답긴 쉬워도

향기롭긴 어렵고

 

향기롭긴 쉬워도

맑기는 어렵더라

 

 

 

오전 11시 10분

근처 훼미리마트 편의점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찜잘방 식당에서 먹고 올까 했지만 비싼 가격에 질낮은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편의점에서 때우는게 낫다.

 

 

오전 11시 40분

 

천안을 나가면 조치원까지는 도시가 전혀없다.

즉, 돈이 있어도 무엇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편의점은 너무 비쌌다.

편의점 직원에게 근처에 마트가 있는지 물어보니 친절히 가르쳐 준다.

고마운 직원이다.

근처 농협하나로 마트에 들려서 물건을 구입했다.

옥수수 수염차와 짝퉁 박카스, 참이슬, 백세주 그리고 육포

왜 저렇게 구입했는가는 나중에 밝혀진다.

 

어제는 너무 악천후에다가 갓길로 자주다녀서 음악을 듣지 못했다.

MP3를 꺼내 김광석 형님의 4집 앨범을 듣기 시작했다.

첫번째 트랙 '일어나'가 나를 흥분시킨다.

 

 

겁없는 커플... 두려움 없는 사랑...

 

 

약간 헤맸다.

그렇게 헤매다 다시 1번 국도를 찾아 똑바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다.

돌아다니면 개고생이다.

 

 

 길을 헤매다 주택가에서 발견한 벌개미취꽃.

원래는 저렇게 잎이 많지 않은데 변종인 것 같다.

 

 

근처에는 석류꽃도 피어있었다.

몇 달후면 알알이 열매를 머금을 것이다.

 

 

어디선가 청량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래서 주위를 살펴보니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무래도 저 나무들에서 나오는 냄새 같았다.

그때 마침 MP3에서는 김광석형님의 노래 '맑고 향기롭게'의 가사가 나를 잡았다.

 

'맑고 또 향기로움이 멀리 있지 않구나...'

 

 

다시 제대로 길을 찾아 1번 국도를 탔다.

 

 

와우! 조치원이 28km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안 믿는다. -_-; 그럴리가 없다.

아마도 직선거리일 것이다. 길은 절대 직선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28km라는 표시를 보니 왠지 마음이 가벼워진다.

 

 

천안대로를 따라 Go~ Go~ Go!

 

 

 

오전 12시 19분

아버지께 점심식사를 잘하셨는지 전화를 드렸다.

나보다는 잘 드신다. 하지만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이 된다.

사실 어제와 오늘 아버지는 천안에 계신다.

아버지는 인테리어 일을 하신다. 정말 힘든일이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공장에 자주 가곤 했었다.

가면 그곳에는 1분도 맡을 수 없는 본드냄새와 온갖 먼지가 가득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하루종일 일하신다. 그게 몇 십년째이다.

그나마 요즘은 일도 많지 않다. 천안까지와서 일하시는 것도 너무 즐거워 하신다.

나도 천안에서 아버지와 얼굴을 같이 맞대고 싶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거라 월요일날 저녁때 얼굴을 맞대고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에는 화제가 자주 있었다

그러다보니 소방서를 보자 반가웠다.

 

 

그리고 마트도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0km마다 마트가 잇었으면 좋겠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이마트.....

마트는 나의 간이화장실이자 떨어진 식수를 보충하는 중요한 곳이다.

이제 조치원까지는 마트가 하나도 없다.

나는 잠시 들러 화장실에 들른 뒤 정수기에 들러 물을 채웠다.

 

 

길가에는 코스모스도 피어있고...

 

 

어제는 비에 맞아 볼품없던 자귀나무꽃도 화사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뽐냈다.

 

 

정말 햇빛이 따갑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한다.

김광석 형님 4집 앨범이 끝이 났다.

나는 노무라 소지로의 '대황하' O.S.T를 듣기 시작했다.

강도 바다도 아닌 길을 걸으면서 대황하라니...

언젠가 파도치는 대천에서 새벽에 대황하 O.S.T를 들으며 전율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여행길이라 혹시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역시 대황하는 물을 보면서 들어야 제맛이다.

 

 

길가다 석재를 판매하는 곳에서 사자를 만났다.

사자의 표정이 좀 멍하다.

하긴 우리학교 사자는 늘 이빨이 빠져있어 애처롭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여의주를 머금은 용대가리 거북이에...

 

 

이건 또 뭥미? ㅋㅋ

 

 

도심을 벗어나니 바로 시골이다.

 

 

오후 1시 20분

갓길이 나타났다. 나는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어차피 갓길은 소음이 심해서 음악도 잘 안들린다.

그리고 자칫 음악소리 때문에 위험해 질 수 있다.

여기서 본인은 한가지 명언(?)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갓길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색을 하다가는 당신의 얼굴이 사색이 될 수 있다.'

 

 

너무 더웠다

잠시 갓길에 앉아 아까 농혐마트에서 구입한 옥수수수염차를 마셨다.

 

 

서울->천안 코스와 달리 천안->조치원코스는 역시 시골이다.

하지만 정겹다.

 

 

길가에 달팽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녀석을 살펴보니 더위에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 움츠려 있던 것이었다.

나는 녀석을 근처 그늘지고 풀들이 많은 곳으로 옮겨 주었다.

 

 

이런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미 늦어서 말라 죽은 녀석이 태반이었다.

나는 길을 걷는 동안 이런 달팽이 녀석이 보이면 모두 근처 그늘진 숲쪽으로 옮겨 주었다.

나는 덥더라도 걸으며 사진을 찍을 여유가 있지만 이 녀석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일 뿐이다.

하루종일 쬐일 땡볕아래에서 녀석들은 말라죽을 수 밖에 없다.

 

 

 

 

살기위해 버둥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맨홀을 만져보니 뜨거웠다. 나도 뜨거운데 녀석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나는 녀석을 들어 근처 그늘진 곳의 나뭇잎 위에 올려주었다.

이후 길가에 보이는 달팽이는 말라죽지 않은 이상 내눈에 띄는 족족 모두 그늘 진 풀속으로 옮겼다.

 

 

오후 1시 34분

선문대 캠퍼스가 여기있나보다.

여기가 통일교 재단이던가?

통일교 사실 공식적인 이름으로는 통일교가 아니지만 난 교주 문선명을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상 세계에서 이보다 유명한 한국인이 없었다.

지금 당장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국가원수 대접을 받는 유일한 한국인일 것이다. 아마 현 대통령보다도 훨씬 더 명성이 높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과 미국의 신자만 해도 엄청나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모 추기경은 자기발로 통일교 신자가 되었지 않나. 일반 주교나 신부도 아닌 추기경이 말이다.

난 우리나라 사람이 참 신기한게 무엇을 근거로 일본을 무시하는 것이며 문선명을 무시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공과를 떠나 정말 대단한 인물이며 개인적으로 한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인물중의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통일교에 대해서는 좋은 종교라는 인상은 솔직히 별로 없다.

 

좀 궁색하다. 로스쿨 캠퍼스라니.. 내가 알기로 선문대는 로스쿨에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로스쿨은 정말로 왜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제도이다.

나느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너무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로스쿨만은 찬성할 수 없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형태의 로스쿨을 원한 것을 아니었을 것이다.

진정으로 서민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가 되길 바라며 로스쿨 정책을 시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층에 의해 로스쿨 정책은 난도질 당했다.

결국 지금의 로스쿨 정책은 기존의 사법시험보다도 못한 기형적인 제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로스쿨을 시행하려면 못해도 3천명 이상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 실효성이 있다.

지금 1천명을 선발하는 사법시험의 폐헤를 없애기 위해 시작한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의 로스쿨은 결국 사시와 별다를 것 없는 인원을 선발하면서 진입장벽만 높여버린 꼴만 되어버리고 말았다.

무변촌 즉 변호사가 없는 지방을 없애기 위한다는게 로스쿨의 목표였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시골로 들어가 봉사하겠다는 변호사가 과연 있을까?

실제로 법조인 집안에는 법조인인 자녀가 많다.

법조인이 얼마나 좋은 지위인지 자신이 알기 때문에 반드시 자녀들을 법조인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하지만 법조인의 자녀라고 반드시 사시에 합격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를 통한다면 사시가 아니더라도 대를 이어 자녀를 법조인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대단히 높아진다.

왜냐면 로스쿨은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실력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로스쿨에 진학을 할 수 없다.

기존의 법조인 출신의 부모를 가진 자녀 말고도 부유층 출신의 자녀들도 로스쿨에 진학할 기회가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의 로스쿨은 귀족학교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다시는 고졸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하여 대통령이 된 노무현, 빈농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하여 노동부장관을 거쳐 대선후보에 5선 의원이 된 이인제,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사시에 합격하여 판사를 거쳐 3선의원을 했던 박헌기, 중졸학력으로 헌법재판관을 역임했던 변정수 재판관같은 인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봉숭아 꽃도 피었다.

어렸을 때는 사내아이라 봉숭아 물을 들이는게 부끄러웠는데..

이제와서 한 번 물을 들여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갓길을 걷다 식당과 가게를 겸한 곳을 발견했다.

나는 생수 얼린 것을 구입하려 잠시 들렀다.

그러나 얼린 생수는 없었다. 그게 반드시 필요한데...

왜 필요한지는 곧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