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 여행/1번 국도 도보여행(2009)

서울에서 대전까지 두발로 걸어가기 : 셋째날 - 2009년 6월 21일 (Part 3)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09. 11. 22.

 

오 마이 갓! (노홍철 버젼)

갓길이 없다!

차가 오지 않는 틈을 타 전속력으로 달렸다.

 

 

아~ 오늘 목표는 17km

내일 목표는 54km...

 

 

이제는 하도 많이 봐서 아무렇지도 않은 분기점.

하지만 이때만큼은 좀 느낌이 달랐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선택의 기회가 언제였는가...

 

가장 처음의 분기점은 내가 중3때 였던 것 같다.

나는 공부를 아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재주가 있어서 그걸로 받은 상 만으로도 과학고에 진학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왠지 과학고에 가면 학업성적이 부진한 학생이 될까 두려워 일반고를 택했다. 누가 나에게 조언해 줄 사람도 전혀 없었다. 학원이든 과외든 누구한테든 조언을 받아 본 일이 없었기에 오직 내 스스로의 판단으로 선택했었다.

지금 생각은 그 때 실수를 했다는 결론이다. 어느 조직에 속하면 어떻게든 그 조직원은 그 클래스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결과를 낸다는 것을 한참이 지난 뒤에 알았다. 결국 나는 내가 선택한 고등학교에서도 별 볼일 없는 학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공부대신 음악에 빠져 들었다.

 

두번째 분기점은 고3때였다.

심지어 수능전날에도 컴퓨터 편곡을 하고 있었을 정도로 음악에 미친녀석이었다.

부모님과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많이 싸웠었다.

그런데 막상 수능시험에서는 어이없이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결국 설득에 실패해서 내 고향 충남대 법학과에 홧김에 원서를 써서 진학했다.

지금 결론은 음악하겠다고 다른 실용음악과에 진학 안한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세번째 분기점은 21살때 였다.

대학에 진학한 뒤 사귀게 된 여자친구와 함께 재수를 했다.

그 친구는 자기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도 전체 1등을 다투다 수능을 망쳐서 나와 같은과를 온 친구였기에 의욕이 대단했다.

결과는 어이없이도 내가 더 잘나왔다. 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그 친구는 마침 딱 한양대 법학과에 점수가 맞았다.

거기에 진학해서 열심히 하면 돈을 안들이고도 고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전혀 그 학교에도 법대에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 혼자 그 학교에 보내 외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 같이 그 학교에 원서를 넣어서 합격했다. 어쩌다 보니 나도 고시공부를 하게 되었다.

결론은 그 친구는 사시에 합격하자 마자 사귄지 8년이 된 나를 바로 버리고 떠났고 나는 지금 3년째 1차에 떨어지고 있다.

아직 결론이 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이것 말고도 자잘한 선택의 기회가 많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선택의 기회가 많을테지만...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런 것은 정말 싫다. ㅜㅜ

 

 

갓길 옆으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잡아서 타고 싶다....

 

 

이제 대전이라는 글자도 제대로 잘 보인다.

그러나 조치원도 15km나 남았다.

 

 

이놈의 길은 끝이 없다.

 

 

조치원이 13km 남았다.

 

 

하지만 이 다리를 건너도 조치원은 보이지 않겠지...

 

 

평소에 문화재 관람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전혀 관심없다!

 

 

잠시 그늘진 갓길에 섰다.

그동안 지나온 길은 그늘이 없어서 무언가를 꺼내 먹을 틈도 없었다.

 

 

가방에서 얼린 생수를 꺼냈다.

몇 모금 마실만큼의 시원한 물이 녹아있었다.

감로수가 바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가방에 들은 녀석을 모두 꺼냈다.

왜 얼린 생수를 두병 샀냐면 둘다 반드시 비슷하게 녹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예상대로 병속에 남은 얼음은 두 병다 비슷했다.

그리고 그 병에 각각 백세주와 소주를 쏟아부었다

 

 

 

부은뒤 흔든다.

병속에 든 미지근한 백세주와 소주가 시원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옥수수수염차 통에 담았다.

순식간에 얼음같이 시원한 오십세주가 완성되었다!

 

 

가방에서 육포를 꺼내고~

 

 

오십세주와 육포와 함께 Go~ go! go!!

 

 

으하~ 좋다~

 

 

완전 설정 사진

 

 

이 다리를 건너도 조치원은 안 보이겠지..

하지만 오십세주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니 그동안 더위에 찌들어 보이지 않았던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오후 6시 44분

오십세주가 들어가니 그제야 주위의 풍경들이 들어온다.

발은 아프지만 그래서 그 아픔을 잊고 적당히 즐겁게 만들어주는 오십세주가 고맙다.

그러나 몇 킬로 미터를 지나자 똑 떨어졌다.

잠시 경치가 좋은 갓길에서 오십세주를 조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모두 꺼내 놓는다.

 

 

남아있던 백세주와 소주를 각각 병에 담아 흔들어 옥수수수염차 통에 담는다.

 

 

으아~ 좋구나~

갓길에서 술을 먹고 가는 건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음주운전도 위험한 데 갓길을 술을 마신채로 걸어서 가다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체질상 한 잔만 먹어도 취하지만 열병을 먹어도 취하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면 한 잔만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리 많이 마셔도 그 상태로 쭈욱 간다는 소리다.

 

하지만 결국...

모두 음주 도보 여행을 정당화 하기 위한 핑계다.

그냥 마시며 걸어보고 싶었다.

마시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오후 7시

이제 조치원이 9km남았다.

아직도 먼 거리이지만 10km안에 들어왔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평소에는 6시쯤에 전화를 드리지만 길이 너무 시끄러워서 전화를 못드렸다.

아버지께는 내일 저녁에 대전에 간다고 말씀을 드렸다. 내가 이 곳에 있는줄은 까맣게 모르신다.

내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드려야지.

 

어떻게 살아야 멋진 삶일까.

나는 아버지가 남자로써 참으로 멋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지위가 높고 배운게 많다고 해서 멋진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게 왜 초등학교때 부모님학력을 제출해야 했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아버지가 알고 지내시던 지인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다들 진심으로 도와주는 게 눈에 보인다. 이제 2년이 넘게 지났지만 지금도 그분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대부분 30년 이상을 알고 지낸 분들이기에 모르는 게 없다.

 

아직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의 기억이 생생하다.

남들처럼 번듯한 국회의원이나 사장님 회장님의 화환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장례식장 공간 전부를 차지하고 손님들을 맞았다.

근무하는 직원들도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단다. 나중에 부조금도 엄청나게 많이 남아서 고민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부조금이 정말 많이 들어와 금전적으로는 아무 걱정없이 치를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대전에 내려가면 주위에서 가져다 준 김치니 반찬등을 치우기에 바쁘다.

혼자 계신데 그것을 어떻게 다 드신다는 말인가.

 

나고 한 편으로는 잘되어야 한다는 고민이 많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좀 많이 놀랐다.

나와 인연을 맺고 지냈던 거의 모든 친구들이 다 한 번은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성격상 고맙다고 말하는 성격도 아니고 먼저 전화해서 살갑게 구는 성격도 아니기에 지금도 미안한 게 많다.

현실적으로 내가 잘되어야 그 친구들에게 잘 해줄텐데...

 

 

 

여기를 건너도 조치원은 안 나온다.

하지만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와 즐겁다.

 

 

아싸~ 7km!

 

 

해는 이미 졌다.

그래도 나는 기어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덤프트럭 한대가 쯤 쓱 지나가도~

 

 

이제는 5km

대전은 42km

 

 

5km가 역시 짧은 길은 아니다.

 

 

오후 8시 58분

드디어 조치원 진입!

 

 

겨우 조치원에 한 발짝 들어온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아주 가끔씩 무궁화호 열차가 서는 서창역도 보이고

 

 

청주가는 길도 보인다.

 

 

편의점이 보이는 것을 보니 번화가로 들어오긴 한 것 같다.

 

 

여기는 홍익대 조치원 캠퍼스

노홍철횽님이 나온곳~

 

 

정문이 상당히 인상깊다.

미대가 유명한 학교여서 더 그런가 보다.

 

 

조금만 더 걷자 고려대 서창캠퍼스 아니 세종캠퍼스가 나왔다.

나는 캠퍼스이름을 바꾼게 횡포라고 생각한다.

엄연히 세종대학교가 있는데 굳이 세종캠퍼스라는 이름을 써야만 했을까?

 

 

 

서창캠퍼스 부근에는 피씨방이 많았다.

그중에서 아늑해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일단 머무를 찜질방의 위치와 내일 가야할 경로를 알아봐야 하니까 말이다.

내일은 1번국도를 타면 안된다.

1번국도를 타면 대전 유성으로 가게된다. 그곳은 집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지방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이제 대략 4분의 3을 왔다.

내일 대전을 향해 Go~ G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