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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제주도 여행(2015)

(2015.07.12) 끝인줄 알았으나 뜻밖의 연장된 여행

by 소설 쓰는 정진영입니다 2015. 7. 18.



비바람이 밤새도록 숙소의 창문을 때렸다.

서울로 돌아갈 비행기가 결항되는 것 아닌가 불안에 휩싸였다.

이른 새벽에 일어난 나는 뉴스 속보에 집중했다.

우선 모든 여객선이 결항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객기까지 결항되는 것 아닌가 불안한 예감이 들었는데....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비행기가 결항됐다는 메시지가 수신됐다.


결항된 비행기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일단 아침은 먹어야 하지 않겠나?

해장국으로 유명한 우진식당(제주시 삼도2동 831)으로 향했다.


이 집의 해장국은 걸쭉한 국물이 독특한 맛을 자랑했다.

깊은 국물맛과 반찬으로 나온 오징어젓갈의 조합이 정말 기가 막혔다.

보말칼국수 이후 제주에서 먹은 최고의 별미였다. 강추!!!










예상대로 제주공항의 상황은 엉망진창이었다.

각 여행사 창구마다 결항으로 여객기를 놓친 여행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줄을 서있었다.

티켓을 예매한 티웨이 측 직원에게 물어보니 당일 티켓은 당연히 없고 월요일 티켓 역시 거의 매진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줄을 서는 게 의미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날 저녁 티켓을 구했다.

어떻게 구했을까?


여기서부터 팁이라면 팁인데 참고가 됐으면 좋겠다.

나는 명절에 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 티켓을 한달전에 미리 예매하지 않고 당일이나 그 전날에 예매한다.

명절 당일이나 전날이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예약된 티켓을 취소하는 이들이 꽤 생긴다.

이제 조금만 부지런을 떨어 집중력을 발휘하면 된다.

코레일 예매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로고침을 부지런히 누르다보면 취소되는 표가 뜨곤 하기 때문이다.

그걸 잽싸게 붙잡아 예매하는 것이다.


나는 준면 씨와 함께 줄에서 빠져나와 공항 내부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티웨이 예약 홈페이지로 들어간 나는 부지런히 새로고침을 누르며 결항되지 않은 저녁 티켓 현황을 확인했다.

1시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한 결과 당일 오후 7시 35분 출발 티켓 2장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나는 준면 씨와 함께 공항을 빠져 나왔다.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비행기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무려 8시간에 달했다.

우울한 분위기가 넘치는 공항에서 그 시간까지 버티고 싶지 않았다.

돈은 더 들었지만 렌트카를 하루치만큼 다시 빌렸다.


준면 씨는 제주도에 오기전 부터 내게 올래국수(제주시 연동 261-16 1층)의 고기국수 맛을 극찬했다.

이왕 여정이 반나절 늘어난 김에 점심을 올래국수에서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일요일은 올래국수가 쉬는 날이었다.

어부지리로 올래국수 옆에 있는 효심국수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어차피 먹어야할 점심이어서 10여분 남짓 줄을 서서 고기국수를 먹었다.

그냥 무난히 먹기 좋은 맛일 뿐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제주도 여행 계획에 없던 곳이지만 나는 넥슨컴퓨터박물관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내 또 다른 전공이 컴퓨터공학인터라 나의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상당한 편이다. 스마트폰은 없지만..

제주도가 태풍의 영향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지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간신히 예약한 티켓이 결항으로 무산될까봐 걱정했는데, 점점 맑아지는 하늘을 보고 걱정을 덜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된 세계 최초의 마우스.





현재 세상에 남아있는 작동되는 애플1 중 1대가 이곳에 있다.

6대 중 1대가 이곳에 있다니.. 오오오... 





게임회사가 만든 박물관 답게 한 시대를 풍미한 다양한 게임기들이 즐비했다.




어렸을 때 이 녀석을 가지고 있다면 꽤 사는 집이었지.




CGA 그래픽 카드로 실행되는 명작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부드러운 캐릭터의 움직임이 당시에 꽤나 화제를 모은 게임이다.




아아.. 추억의 게임 '고인돌1'이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로 실행되고 있었다.

이 게임 때문에 스페이스바 키를 날려 먹은 아이들이 많았지.




EGA 그래픽 카드로 구동되는 명작 '킹스퀘스트'




현재 사용되는 모든 그래픽 카드의 기본이 된 VGA.

이 그래픽 카드로 구동되는 롤플레잉 게임의 명작 '원숭이섬의 비밀'

이거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했었다.





90년대 사춘기 시절 집에서 음악을 작곡할 때 썼던 사운드 카드 '사운드 블래스터'가 전시돼 있었다.

당시 사운드 카드는 매우 고가여서 나는 부모님께 공부에 필요하다는 핑계로 졸라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내가 사용했던 물건이 이제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니...

기분이 묘했다.






IBM PC AT.

80286 CPU를 채용한 개인용 컴퓨터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물건이지만 한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던 컴퓨터 코모도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맥북에어와 비교하면 30년전 포터블 컴퓨터는 그야말로 돌덩어리 그자체이다.

기술의 발전이 대단하다.




반가운 물건을 만났다.

나는 약 13년 전에 이 기종을 중고로 구입해 사용했다.

당시에도 매우 구형기종이었는데, 이제 박물관에 있다.





개인용 컴퓨터를 확산시킨 명작 애플2.




다시 봐도 세련된 매킨토시의 디자인.

이 기종은 CF도 명작이다. 링크 참조 https://youtu.be/2zfqw8nhUwA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넥슨컴퓨터박물관이 진품 애플1을 구하기 전에 복각해 전시했던 모델.




스마트폰 게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게임들의 중독성이 상당하다.

알카노이드의 원형인 이 40년 가까이 된 게임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이날 이 자리에서 이 게임을 꽤 재미있게 즐겼다.





MSX컴퓨터에서 게임기에 필요한 기능만 따로 뗀 제믹스.

어렸을 때 제믹스를 가진 아이들은 진짜 콧대가 장난 아니었었지.






1973년에 만들어진 세계최초의 디지털 시계와 1977년에 만들어진 계산기 시계.





글로만 접했던 이 물건을 직접 만져보고 즐길 수 있다니.. 하하하!!





애플의 대박 망한 모델 리사.

가격이 어미애비를 못 알아볼 정도로 높아 실패한 물건이다.




참으로 오랜 만에 DIR이란 명령어를 입력해봤다.

아... 저 추억의 그린 모니터...





내가 처음으로 가졌던 컴퓨터 대우 아이큐 슈퍼 본체도 전시돼 있었다.

1992년 동네 컴퓨터 학원에서 대당 10만원에 떨이로 팔던 물건을 부모님이 구입해 집으로 들여 놓았다.

나는 이 컴퓨터로 GW-BASIC을 익히며 프로그래밍에 빠져들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카페의 명물 메뉴인 '키보드 와플'과 '마우스빵'

맛이 꽤 좋았다.





비가 그치자 박물관 옆 화단에 피어난 수국의 색깔이 더욱 빛났다.






수국은 토양이 산성일 때는 푸른 색의 꽃을 피우고 염기성일 때는 붉은 색의 꽃을 피운다.

푸른 수국과 붉은 수국이 골고루 화단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무래도 박물관이 의도적으로 토양의 성질을 조절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한 곳에서 골고루 피어나나.






아침까지 비바람이 몰아쳤던 제주도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년 전 제주도에 왔다가 무심코 방문했던 제주대학교 아라캠퍼스에서 만난 치자꽃이 생각났다.

달콤하면서도 풍성한 치자꽃 향기는 그야말로 화중지왕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면 씨가 치자꽃향기를 경험하게 만들어주고 싶어 잠시 제주대학교 아라캠퍼스에 들렀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던 준면 씨도 꽃향기를 맡자 표정이 바뀌었다.

치자꽃 향기의 위력이다.





공항으로 향하기 직전 다시 유리네식당에 들러 이른 저녁을 먹었다.

역시나 갈치구이의 맛은 좋았다.


내 생애 가장 긴 기간 동안 누군가와 함께 떠났던 여행이 비로소 끝났다.

제주도는 참 매력적인 공간이다.

다음에는 다양한 곳을 산발적으로 다니는 여행 대신 소수의 장소를 집중적으로 즐기는 여행을 하고 싶다. 

돈을 부지런히 많이 벌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