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마른 봄이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는 자리에 다시 신록의 축복이 넘쳐난다. 지금 중묵리 소나무 숲에선 죽어서 쓰러진 것들의 묵은내와 새롭게 피어난 것들의 풋내가 지나간 봄비의 물비린내 속에 비벼져 어수선하다. 이러한 어수선함이야 말로 건강함� 증거다. 중묵리 소나무 숲은 지금 척박함을 딛고 일어서 다시 신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지난 2002년 4월 14일 오후 1시께, 충남 청양군 비봉면 중묵리의 산 124번지 임야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불은 때 마침 불어온 순간 최대초속 15m의 강풍을 타고 인근 지역으로 삽시간에 번졌다. 강풍의 이동 방향은 능선과 일치했다. 초동진화의 손길보다 불길을 등에 업은 강풍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불은 능선을 잇대어가며,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비산해가며 곳곳에서 덩치를 불렸다. 봄볕에 잘 마른 지난 계절의 낙엽은 흙으로 되돌아가기도 전에 불쏘시개로 타올라 모목(母木)을 덮쳤다. 숲의 주된 수종은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였다. 덜 탄 재는 바람을 타고 도로와 하천을 가로지르며 되살아났다. 불은 손 쓸 새도 없이 민가 뒤뜰까지 밀려들어와 철썩거렸다. 대대로 살아온 터가 불 속으로 쓸려 들어갔지만 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불은 불과 네 시간여 만에 발화지점서 20여㎞ 떨어진 곳까지 당도했다. 불의 이동속도는 사람의 평균 걸음걸이 속도보다도 빨랐다. 마을 하늘엔 마른 먹구름이 짙게 일렁여 사방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산림청 헬기 3대, 공무원·의용소방대원·군인 등 1000여 명이 진화에 긴급 동원됐지만 불길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불길은 불 보듯 뻔해도 사람이 답보할 순 없는 길이었다. 15일 새벽, 소방당국은 날이 밝자 헬기 15대와 2800여 명을 추가 투입했다. 고단한 진화작업 끝에 이날 오전 8시 30분께서야 겨우 큰 불길이 소방당국의 통제권에 닿았다.
 

   
▲ 숲에 들어서면 오래전 화마의 상흔, 헐거움과 조밀함의 대비가 여전히 선명하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18일 청양경찰서는 '천년보살'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던 무속인 김 모 씨(52·여) 에게 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청양경찰서에 따르면 '천년보살'은 의뢰인 이 모 씨(45·여)의 부탁을 받아 이 씨 부모의 묘소에서 제를 올린 후 부적을 태워 날려 보내다 불을 냈다. 충남 도정 사상 최대의 산불의 화근은 이토록 사소하고 어처구니없었다.

군계(郡界)를 넘어 예산까지 삼킨 불은 4개 면, 29개 리에 걸쳐 임야 3095㏊를 태웠다. 소와 돼지를 비롯한 수많은 가축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주인 없는 축사에서 타죽었다. 겨우 살아남은 산토끼, 고라니는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도 경계하기만 할 뿐 기력을 소진한 나머지 다리 근육에 힘을 주지 못했다. 8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90여억 원의 재산 피해가 집계됐다. 인접 생태계 피해 규모는 지금까지도 화폐 단위로 짐작되지 않는다. 산림법 제120조는 '과실로 산림을 소훼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천년보살'이 천 년간 살아서 매년 벌금을 갖다 바쳐도 어림없는 피해 규모였다.
 

   
 

이후 피해 지자체들은 무너진 산림 복구에 사력을 다했다. 지난 2000년 봄, 동해안 5개 시·군에 걸쳐 2만 4000여㏊를 태운 '단군 이래' 최대의 산불에 덴 중앙 정부도 부랴부랴 복구 지원 예산을 보탰다. 피해 면적 가운데 36%(1129㏊)는 자연복원, 64%(1966㏊)는 인공복원 과정을 거쳤다. 인공복원 지역엔 2003년부터 4년 간 100억여 원의 예산이 투입, 20개 수종 336만 본이 식재됐다. 급경사 피해 지역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 등 침엽수와 참나무 등 장기 활엽수를 중심으로 조림됐다. 나무를 심기 어려울 정도로 급경사인 지역엔 종자가 뿌려졌다. 완경사 피해 지역은 산수유, 밤나무 등 유실수로 조림돼 향후 주민들의 경제적·물적 토대의 확보를 도모했다. 그렇게 숲은 다시 숲의 꼴을 갖춰나갔다.

산불 발생 이래 1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 발화점이었던 중묵리에서 마을 숲의 아름다움을 묻는 일은 여전히 민망하고 한가한 일이다. 이름을 묻기도 전에 집 현관문 안으로 돌아섰던 한 주민은 "중묵리엔 마을 숲이 없다. 10년 전 모두 타 버렸다. 산불은 당시 집 뒤편까지 치달았다. 지금도 바람만 불면 무섭다"고 단문으로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 주민의 집 뒤편에서 멀지 않은 곳에 키 큰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주민의 단문으로 이뤄진 대답 속에서 숲은 아득히 멀어보였다. 단문이 다음 단문으로 건너가는 시간이 서늘했다. 그 시간 속엔 당시 집 뒤편까지 치달았다던 불길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깊게 패어있는 듯했다. "지금도 바람만 불면 무섭다"는 말은 그 주민만의 심정은 아닐 터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숲에서 산불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민가로 이어지는 길에서 숲과 산을 바라보면 헐거움과 조밀함의 대비가 여전히 선명하다. 당시 산불로 땅속 유기물 층까지 타버릴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의 토양은 지금도 맨흙이 들떠 바스락거릴 정도로 척박하다. 상대적으로 덜 타 비교적 온전히 나무들을 보전한 숲에서도 밑동 그을린 나무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 산불 발생 이듬해인 2003년 4월 14일,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 꽃을 피웠던 진달래. 충청투데이DB

그러나 절망의 자리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삶의 자리로 거듭나고 있다. 산불 발생 이듬해 봄부터 진달래가 타버린 땅위에 꽃을 피워냈다. 덜 탄 나무는 타다 남은 쪽으로 붉은 새순을 돋아냈다. 봄 햇살 자글거리는 척박한 땅에선 제비꽃, 할미꽃 등 야생화를 비롯한 초본식물들이 잔뿌리로 마른 흙을 움켜쥐었다. 인공조림 지역에 교두보를 박은 소나무 묘목들은 왁스를 바른 듯 기름진 여린 잎새를 반짝였다. 숲 외곽 볕 잘 드는 곳에선 철쭉이 붉은색과 보라색 사이를 파고들어 봄 햇살을 튕겨냈다. 새들이 저녁 숲으로 되돌아가자 산토끼, 고라니도 뒤를 이었다. 숲은 그렇게 조금씩 산불 이전의 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다.

성마른 봄이 자신의 흔적을 지워가는 자리에 다시 신록의 축복이 넘쳐난다. 지금 중묵리 소나무 숲에선 죽어서 쓰러진 것들의 묵은내와 새롭게 피어난 것들의 풋내가 지나간 봄비의 물비린내 속에 비벼져 어수선하다. 고사목 그늘 아래 빈곤한 자리에 각시붓꽃이 보랏빛 앙증맞은 꽃 한 송이를 피워 올렸다. 고사목의 수피(樹皮)는 검게 젖어있었다. 도저히 불붙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수피를 매만지자 오래된 그을음이 손바닥에 묻어났다. 산불은 열의 아홉이 인재다. 반성이란 늘 후불제일수밖에 없는가? 올해도 숲은 다시 살아서 돌아오고 사람들은 반성을 거듭하고 있다.

청양=정진영 기자 crazyturtle@cctoday.co.kr
 

   
▲ 각시붓꽃